(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다 같은 배우지만 누구는 건물 월세를 받고 살고, 누구는 평생 월세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다 같은 가수지만 누구는 노래 몇 곡만으로 평생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누구는 시골 장터 행사무대라도 서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다.
화려한 연예계의 극심한 소득 격차가 최근 새삼 화제를 모았다. 누구나 스타를 동경하고 지향하며 연예계를 바라보지만, 소득 면에서 여유로운 스타는 상위 1~1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0%의 거대한 '하위 계층'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과 같이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
◇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이 연예인 걱정?"
"커피는 신동엽이 살 때 먹는 것" "돈은 잘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 등 다시없을 자린고비 노하우로 데뷔 25년 만에 뜬 김생민. 그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인 강남의 타워팰리스에 살고, 고급 외제차인 벤츠 승용차를 몬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그가 설파하는 '절약정신'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일반 샐러리맨과 노동자가 스크루지 저리 가라 절약을 한다고 사회생활 25년 만에 김생민처럼 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 없던 연예인 중 한 명인 김생민의 현재 생활 수준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그래도 연예인 아니냐"고 말한다. 연예인은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잘 버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인용해 공개한 연예인 소득 격차가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소득 기준으로 가수의 상위 1%는 연평균 42억6천400만 원, 배우의 상위 1%는 연평균 20억원 넘게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위 10%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가수는 연평균 수입이 7억3200만 원, 배우는 3억6천7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봉 1억 원 정도는 우스운 상황.
각종 스캔들이나 사건, 사고에 처한 연예인을 걱정하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처럼 스타들의 높은 소득수준에 대한 부러움에 기반한다.
최근에는 가수 고(故) 김광석의 저작권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수는 세상을 떠도 자작곡에 대한 저작권, 음반 발매와 공연 등에 대한 저작인접권 등에서 나오는 수입이 유족에게 가기 때문이다.
◇ 연봉 1천만원이 어려운 하위 90%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연예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스타 중의 스타에만 해당한다. 이 자료에 나온 가수와 배우 상위 10%의 소득이 현재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는 이들 전체 수입의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의 하위 90%는 연평균 수입이 870만원, 배우의 하위 90%는 연평균 수입이 620만 원이었다. 연봉 1천만원도 안되는 것이다.
지금은 TV와 영화에서 자주 보지만 그전까지 10~20년은 연극무대에서 '연봉 300만~500만원'으로 살았다는 '회고'를 하는 배우들이 부지기수다. 연극계는 TV와 영화계에 마르지 않는 수원으로 기능하지만 이처럼 소득 격차가 극심하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얼굴을 내민다고 상황이 바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배우는 선택되어지는 직업인 만큼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하면 소득도 없다. 또한 극 중 비중과 인지도에 따라 출연료가 천차만별인 것은 물론이다. 단역 배우의 경우는 교통비와 의상비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배우로 수입을 신고한 인원은 1만5천870명, 가수로 수입을 신고한 인원은 4천667명이었다. 이들 중 90%는 월수입이 50만~70만 원이었다.
방탄소년단이나 빅뱅처럼 세계시장을 뒤흔드는 K팝스타들, 히트한 자작곡이 많은 가수는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리지만 그 외 많은 가수는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기성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록 가수들이나 힙합 가수들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추구하다가도 TV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면서 "가수 활동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개그맨들이 TV 개그 프로그램의 폐지에 좌절하며 집단 항의한 것 역시 생계 문제와 직결된다. TV에 나와야 행사 진행 등 외부 활동 기회가 생기고, 광고를 찍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당장 수입이 끊기기 때문이다.
◇ 매니저·기획사도 소득차 극심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기획사의 소득차도 극심하다. 한류스타를 거느리고 있으면 매니저나 기획사도 돈방석 위에 앉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사무실 운영비를 대기도 버겁다.
한 중견 배우 기획사 대표는 22일 "배우들의 출연료만으로는 사무실 운영이 어렵다. 광고를 찍어주는 배우들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이름 있는 배우를 많이 데리고 있어도 광고를 찍지 못하고 해외 특수가 없으면 기름값, 스태프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며 "대부분의 배우 기획사들은 외부 투자 없이 버티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수 기획사는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다.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한번 터지면 큰돈을 벌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는 훈련 비용과 데뷔 비용으로 거금을 쏟아붓고는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아이돌그룹 데뷔 시키겠다고 나섰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실패한 매니저들이 심심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2의 소녀시대나 방탄소년단을 꿈꾸며 베팅하는 기획사들이 이어진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들의 소득 격차가 극심한데 그들과 일하는 매니저들은 오죽하겠냐"며 "물론 한 몫 잡은 성공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 사람 만나서 차값, 밥값 계산할 일을 걱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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