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동북아재단 소장, 시마네현서 1953년 어부 구술 자료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울릉군 관할구역으로 한다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서 석도가 독도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은 독도의 명칭이 '돌섬(石島)-독섬(石島/獨島)-독도(獨島)'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일본인의 구술록을 시마네현 총무부 소장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2조의 내용은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事)"인데, 일본 정부는 석도가 독도라는 주장을 증명할 문헌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 울릉도로 이주한 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돌로 된 섬을 '돌섬' 혹은 '독섬'이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은 것이 '석도'(石島)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소장이 찾은 구술록은 1953년 7월 11일 어부였던 오쿠무라 아키라(奧村亮, 당시 43세)의 발언을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2과가 기록한 문헌인 '죽도어업의 변천'이다.
울릉도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는 오쿠무라는 "당시 조선인은 '랑코섬'을 독도라고 했다.(當時, 朝鮮人は, ランコ島(竹島)を獨島(トクソン)) 일본인과 대화할 때는 '랑코섬'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오쿠무라의 구술록에서 독도 옆에 기재된 '도쿠손'(トクソン)이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도쿠손은 '독섬'의 일본식 발음을 표기한 것이다.
김 소장은 "일본인의 구술에 따르면 일본인은 독도를 죽도(竹島)보다는 '랑코섬'이라고 했다"며 "일본인도 독도(獨島)와 독섬을 동일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돌섬-독섬-독도 음운변화설이 힘을 얻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시마네현 도쿄사무소 직원이 현지로 가거나 관계자의 의견을 묻는 등 고심 끝에 정리했다'는 구술록의 해제를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가 생산한 문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해방 직후 국내에서 창간된 일간지 '한성일보'의 1948년 6월 13일자에도 '독도(獨島)는 우리의 섬, 원명(原名)은 돌섬(石島)'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독도에 대해 "원래 이름은 '돌섬'(石島)인데 이후 와전돼 '송도'(松島) 또는 독섬(獨島)으로 개칭됐던 것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동북아역사재단과 영남대가 20일 공동 개최하는 '근대 한국과 일본의 독도 관련 자료와 지도에 대한 역사적 국제법적 재조명'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독도의 명칭 변화에 대해 발표한다.
학술회의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지리부도에 나타난 독도 인식, 일제식민지 책임과 독도 주권의 국제법적 검토 등에 대한 주제 발표도 진행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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