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채무 제로] (하)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 아닌가?

입력 2017-10-21 10:31   수정 2017-10-21 10:53

[동전의 양면, 채무 제로] (하)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 아닌가?

각종 기금 채무 변제로 돌려 쓰는 지자제 '꼼수'인지 따져봐야

"채무 제로 목표에 몰입하면 지역경제 위축되고 성장동력 잃을 것"

(전국종합=연합뉴스) 자치단체 주장처럼 채무 제로는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무리한 채무 제로는 지역경제와 시민복지를 위축시키고 미래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기금을 채무 변제로 돌려 쓰는 등의 꼼수가 동원되면서 현직 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에 불과하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경남도가 채무 제로를 위해 추진했던 진주의료원의 강제 폐업과 무상급식 중단, 양성평등기금 등 12개 기금 폐지 등은 이런 문제점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는 주장이 많다.


◇ 무리한 채무 제로정책, 갈등만 남긴 채 '원위치'

진주의료원은 1910년 설립돼 103년간 경남 서부지역 주민들에게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해마다 40억∼60억원 손실이 발생해 경영난을 겪는다는 이유로 2013년 강제 폐업됐다.

진주의료원이 채무 제로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서부 경남지역 주민을 위한 공공의료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찬반양론으로 갈린 지역사회 갈등의 골도 깊게 팼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서부경남공공병원설립 도민운동본부 등은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은 뒤 서부경남지역 의료 소외와 의료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 등을 벌이는 등 진주의료원은 폐업한 지 4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무상급식 중단도 전남도교육청과 학부모 등의 반발을 불렀고, 1년이 넘도록 진보와 보수 간 편 가르기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물러난 뒤 지난 7월 경남도와 경남교육청이 무상급식 복원을 논의하기 위한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이 문제 역시 갈등만 남긴 채 원점으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도 "채무 제로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민 삶의 질이나 지역발전 측면에서 매끄럽지 않은 점이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장학기금 빼서 채무 변제'…꼼수 동원도 비일비재

채무 제로를 위해 꼼수가 동원되는 일도 흔하다.

전남 곡성군은 장학금과 문예진흥·노인복지·체육진흥 등 4개 기금을 합쳐 조성한 통합 관리기금 55억원을 빌려 지방채를 청산했다.

곡성군이 "지방채 상환 능력이 없는 지자체가 종종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지만 "원칙을 무시하고 장학기금 등을 빚 갚는 데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기금을 빌린 것은 실제 빚을 탕감한 것과 달라, '아랫돌 빼서 윗돌 괸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원도 강릉시는 내년에 채무 제로 도시에 합류할 전망이지만 "이자율이 낮은 건강한 부채를 연차적인 상환계획을 무시하면서까지 조기 상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발에 직면해 있다.

조영돈 강릉시의회 의장은 "올림픽 관련 사업 투자로 지역의 각종 현안사업이 미뤄진 것이 많다"며 "채무가 무서워 필요한 사업에 투자를 미룬다면 3년, 5년이 지난 후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태백시는 채무 상환을 위해 세외수입 효자 사업인 풍력발전단지를 팔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재정 건전성 확보 위해 필요하지만 사안별로 따져봐야"

전문가들은 채무 제로가 방만한 투자를 억제하고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채무 제로라는 구호에만 얽매여 정작 중요한 곳에 제때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지역경제와 미래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며 합리적인 정책 추진을 당부한다.

특히 채무 제로가 현직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채무 제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채무 제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안별로 따져볼 필요는 있다"며 "세입을 늘려 빚을 갚는다기보다 다른 예산을 삭감하거나 기금을 없애고 시행해야 할 사업을 축소해서 채무를 줄이는 것은 옳다고 할 수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도 경영하면서 적자경영을 할 때가 있듯이 투자할 부분은 투자해야 한다"며 "채무 제로는 빚을 갚으면 좋다는 유권자 인식에 호응하는 포퓰리즘에 가까울 수 있어 이행 효과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실련 경기도협의회 노건형 사무처장은 "채무 제로 달성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지만 시정 평가의 잣대는 재정을 효율적으로 썼느냐가 돼야 한다"며 "선거를 앞두고 여러 지자체가 잇따라 채무 제로 선언을 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득진 태백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자치단체장들이 지역 실정은 고려하지 않고 채무 제로 달성이라는 성과에 너무 몰입하면서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서민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채무 제로의 어두운 단면을 경계했다.

(백도인 손상원 임보연 황봉규 최찬흥 기자)

doin1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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