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회대응 역사 '촛불집회 이전과 이후' 나뉜다

입력 2017-10-25 05:50  

경찰 집회대응 역사 '촛불집회 이전과 이후' 나뉜다

유연대응 기조에 시민들도 호응…현장서 경찰에 '박수' 풍경도

새정부 출범 이후 집회시위 대응 관점 변화 중…각종 개선안 마련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나는 촛불집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촛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이 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72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경찰의 촛불집회 관리 노력을 치하하며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한민국 국민이 독일 에버트재단의 '에버트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당시 집회가 매번 무사히 치러진 데는 "평화적으로 집회를 관리한 경찰 여러분의 노력도 컸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말부터 4개월여간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는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계기였다.





◇ 시종일관 '유연대응' 기조…집회 참가자들도 호응 '선순환'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는 당시 경찰에게도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다 보니 매 집회를 앞두고 인원 예상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였다. 경비병력 운용 계획을 짜기도 쉽지 않았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가한 집회여서 충돌 등 돌발상황 우려는 늘 있었다. 경찰이 시위 현장에 투입 가능한 경력은 많아야 2만명대 수준이지만, 집회 참가자는 이를 훨씬 웃돌아 충돌이 발생하면 수습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집회 초반부터 마지막 집회까지 시종일관 '유연 대응' 기조를 유지하며 시위대와 마찰을 최소화했다. 4개월여에 걸친 긴 집회 기간 경찰과 시위대가 딱히 충돌했다고 볼 상황은 찾기 어려웠다.

불과 1년 전인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차벽으로 시위대 이동을 원천 차단하고, 살수차까지 투입해 진압에 나서다 사망자를 낸 일이 있었던 터라 '그때 그 경찰이 맞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당시 경찰 지휘부는 집회에서 다루는 사안과 참가자 구성 등을 종합해볼 때 촛불집회가 불법 폭력시위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이 "나라를 걱정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방송을 하고, 경찰 버스 외벽에 준법시위를 촉구하는 홍보문구를 붙이는 등 오히려 '감성적'으로 시위대에 다가가는 모습도 보였다.

교통 소통 등 이유로 청와대 방면 행진 신고에 번번이 조건을 붙이거나 금지·제한통고해 비판받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허용된 범위에서 최대한 집회와 행진을 보장했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현장에서 시위대와 상호작용해 선순환을 낳았다.

초반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가 경찰과 대치 도중 몸싸움을 벌이거나 차벽 위로 오르는 등 돌발상황이 있었지만, 경찰이 물리력 행사를 절제하자 다른 참가자들이 오히려 그런 행위를 만류하고 비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역전됐다.

시민들이 폴리스라인에 선 의무경찰들을 향해 "고생한다"며 박수를 치고, 참가자들이 경찰 버스에 붙인 수많은 스티커를 보고 "나중에 떼려면 경찰이 고생하겠다"며 집회 종료 후 손수 스티커를 제거하는 모습도 보였다.

헌법상 국민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가 이처럼 보장된 가운데 매주 평화적으로 집회가 이어지자 외신들도 달라진 한국의 시위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촛불집회를 중요 뉴스로 다뤘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천700만명, 사상 첫 '청와대 포위' 행진 등 온갖 역사적 기록을 써낸 촛불집회는 경찰에게도 매우 의미가 큰 사건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처럼 장기간 대규모로 이어진 사상 초유 집회를 큰 문제 없이 관리한 경험은 앞으로 경찰에게도 상당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경찰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사건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 새 정부 출범 이후 집회시위 대응 '패러다임 변화' 추구

촛불집회 당시 경찰이 보여준 집회·시위 대응 기조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집회·시위는 경찰의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잦은 영역 중 하나여서 지금까지 다양한 개선책이 등장했다.

경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는 지난달 내놓은 권고안에서 집회·시위를 '관리' 또는 '통제' 대상으로 보던 종전 관점에서 벗어나 국민 기본권으로서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경찰에 요구했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집회·시위는 신고나 진행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경찰력 행사를 최대한 절제하는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살수차를 사용하지 않고, 차벽도 예외적으로만 설치하도록 했다.

다만 집회·시위는 개최 목적, 주체, 규모 등에 따라 양상이 다양하고, 현장에서는 늘 '공공 안녕'과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 간 충돌 지점이 생기는 만큼 향후 집회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경비 분야에 정통한 한 경찰관은 "개혁위 권고가 불법행위를 무한정 방치하라는 뜻은 아닌 것으로 해석되고, 명백한 위법행위는 당연히 제지해야 할 것"이라며 "적당한 선에서 경찰권 행사 범위가 정리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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