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과도한 영장 기각 비난은 부적절…박근혜 재판 잘 진행되길"
5대 개혁과제 제시, 사법개혁 착수…"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대법관 의견 존중"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은 25일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으며 여러 위원회를 통해 권한 분산·행사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한 달을 맞은 이 날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법원장의 방대한 권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대법원장에게 바라는 것이 남다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새 대법관 임명 제청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에 대해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지만, 다양성에 관해서는 염두에 두겠다"며 "시기에 맞는 제청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추천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주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대법원장은 변호인단 전원 사퇴로 이날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차질을 빚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힘든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잘 진행돼서 결론도 잘 도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최근 이른바 적폐수사 등과 관련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반발한 데 대해서는 "영장 재판도 재판이고 결과는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며 "과도하게 법원을 비난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할지를 두고 사법부 내부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김 대법원장은 "결론을 딱히 갖고 있지 않다. 이번 주 대법관 회의에서 의견을 듣고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법관들의 의견이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하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사법부 내 다른 그룹과 같은 비중으로 두기는 어렵고 높은 비중으로 듣겠다. 최대한 많이 존중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대법원장은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등 종종 하급심에서 대법원 판례와 다른 판결이 내려지는 데 대해선 "법관 개인의 고유한 양심과 법률에 따른 판단이라면 존중돼야 하고 그것만으로 깎아내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법관 비위 조사 및 징계와 관련해선 "장기적으로 윤리감사관을 개방직으로 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 실현'을 최우선 가치에 둔 사법개혁 5대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 법관의 독립 ▲ 충실한 재판을 위한 인적·제도적 여건 마련 ▲ 전관예우 근절을 통한 사법신뢰 제고 ▲ 상고심 제도의 개선 ▲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실현 등을 사법개혁 과제로 들었다.
그는 "이것들은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과제"라며 "앞으로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차분하고 진중하게 추진한다면 임기 내에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법원장은 간담회 직후 "법원 내에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실무준비단'을 구성해 개혁과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권한이 비대하다는 지적이 있는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재정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이 점점 비대해지고 재판을 끌고 나가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일반 공무원이 관여할 부분이 없는지 보고 개방직으로 할 것인지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행정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행정처 판사들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부작용 해소를 위해 재정비가 필요하다. (내년) 2월 인사 전에 일부라도 가시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고심 개선과 관련해선 "개인적으로는 상고허가제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신중한 검토를 거쳐 안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사법행정에 국회가 관여하는 '사법평의회' 설치 안을 국회가 논의 중인 것과 관련해선 "우리 제도로 받아들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원의 독립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 지지하거나 따를 생각이 없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날 김 대법원장은 간담회가 진행된 한 시간 내내 행사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상태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제 뜻을 알리는 기회인 만큼 서서 질문에 답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간담회 말미에는 대법원장 취임 후 처음 취재진과 대면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김 대법원장은 "이 자리가 가볍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간담회장에) 들어와서 보니 무겁다는 생각을 새삼 느낀다"며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 말도 함부로 못하고 전화통화도 잘 못한다. 그만큼 이 자리가 힘들고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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