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3만명 찾는 청소년쉼터…"비행청소년 아닌 '가정 밖' 청소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지하철역 같은 데서 사람들이 속닥속닥 해요. '가출해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안 좋게 봐요. 쉼터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에 대한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청소년단기쉼터에서 만난 A(14)양은 쉼터 인근 주민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가출청소년 14명이 생활하고 있는 이 시설은 2015년 건립 당시에도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들이 온다더라'는 소문을 들은 주민들이 반발했다. 직원들의 설득 작업 끝에 겨우 문을 열었다.
지금은 곱지 않은 눈길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 공식명칭 대신 '기지개 꿈터'라는 별칭을 간판에 달고 있다. 김경동 부장은 "지역 주민을 상대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함께 배드민턴도 쳤다. 민원에 가장 앞장선 분이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도 '가출청소년=비행청소년'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길게는 9개월까지 이곳에 머무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폭력이나 가족 구성원과 불화로 집에 들어갈 수 없는 경우다. A양은 어머니와 불화 탓에 거처를 옮겼다. 아버지와는 가끔 외출해 만나기도 한다. B(17)양은 거의 부모처럼 속박하는 오빠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B양은 "오빠가 성적표 관리도 하고 휴대폰 검사도 해서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쉼터에 온 지 3주차인 C(22) 씨는 스무 살 때 집을 나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모두 폭력을 행사했다. C 씨는 "별 이유도 없이 때렸다. 아빠가 심했는데 엄마도 점점 닮아갔다"며 "'스무 살 됐으니 나가서 살라'고 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일을 했지만 살길이 막막해 쉼터를 찾았다. 지금도 낮에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성인이지만 법적으로 청소년에 해당하는 24세까지 쉼터에서 생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무 살 넘어 쉼터를 찾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취업난 등 여러 가지 환경이 취약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생활하는 망우청소년쉼터는 지상 2층 규모에 공부방·헬스장·상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다른 쉼터에는 좀처럼 없는 노래방이 인기다. 옥상에는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작은 텃밭도 마련됐다. 침실은 2∼4명이 하나를 쓴다.
쉼터에서는 10여 명의 선생님이 교육과 상담·심리치료 등으로 자활을 돕는다. 요가·네일아트부터 미술치료·템플스테이까지 55가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입소생들은 학교에 가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오후 9시까지는 쉼터로 돌아와야 한다. 외출은 하루 한 번, 외박은 한 달에 네 번 허용된다. '귀소 시간이 빨라서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이 종종 나오지만, '그래도 집보다 편하다'는 입소생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이곳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 17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0명이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50명은 장기쉼터 등 다른 기관으로 옮겼다. 이들은 지속적인 가정폭력이나 부모의 방임으로 갈 곳이 없는 경우다.
26일 여가부에 따르면 전국 123곳 쉼터를 찾은 청소년은 지난해만 모두 3만329명. 경찰에 접수된 가출청소년 신고가 2만1천여 건인 점을 감안하면 가족이 찾지 않을 정도로 오갈 데 없는 청소년이 많다는 얘기다.
김병록 소장은 "처음 가출하는 아이는 부모가 그날이나 다음 날 바로 데리러 오지만, 반복되면 부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첫 청소년쉼터는 1992년 10월28일 문을 열었다. 여가부는 이를 기념해 이달 23일부터 이날까지를 '청소년쉼터 홍보주간'으로 정하고 일일 종사자 체험과 홈커밍데이 등 행사를 했다. 가출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쉼터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기념식을 열고 우수기관과 모범적으로 자립에 성공한 청소년들에게 표창을 준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개인사를 안고 있는 가출청소년들을 비행청소년으로 몰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개선하고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