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를 방문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5일(현지시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앞에서 '친북좌파세력' 운운하며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 대표는 미국외교협회(CFR) 주최 한반도 전문가 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현재 한국 정부의 주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북좌파세력 때문에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 북한의 위협보다 더 두려운 위기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또 "많은 한국 국민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에 불안감과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 방미의 주요 목적인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나온 얘기이고, 홍 대표의 평소 어투가 거침없다고는 하나 부적절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CFR 간담회에 참석한 한반도 전문가들은 민간 싱크탱크에서 일하지만,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에 참여하거나 미국 내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참석자 대다수가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홍 대표가 이들과 논쟁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 대표도 나중에 "전술핵이 한반도에 재배치되지 않는다면 한국 스스로 핵무장 할 수밖에 없다고 했더니 '꼴 같지 않은 게 미국을 협박하는 거냐' 이런 느낌이 들더라"면서 "그래서 우리는 죽고 사는 문제다. 경제제재가 문제가 돼서 못할 것 같으냐고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 한반도 전문가는 우리 국내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외교·안보 정책을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국내 정치권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니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홍 대표의 발언은 국내에서도 또 다른 정쟁거리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명색이 제1야당 대표인데 이런 말을 했을까 두 귀를 의심했다"면서 "국감 와중에 외국에 가서 벌인 일이 현 정부를 원색 비난하고 외교적 혼선, 한미동맹의 균열을 부추기는 것이라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김철근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외교·안보정책에 아무리 무능하더라도 국익을 훼손하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홍 대표의 미국 행보는 자제돼야 한다"고 했고, 정의당은 "자신의 정치적 영달을 위해 대한민국의 안위를 수렁에 빠뜨리려는 한심한 행태"라는 대변인 논평을 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외교·안보는 절대로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에선 그런 정치판 싸움이 일상화했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 더 심해져 가는 것 같다. 독한 말만 오갈 뿐 '6·25 이후 최대 위기'의 엄중함이나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국론을 수렴해 이끌어야 할 정치권이 이러니 시민단체도 분열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와 민주노총 등 220여 개 단체가 모인 '노(No) 트럼프 공동행동'은 내달 4일과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반대하는 범국민촛불대회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이 있는 8일에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연다고 한다. 진보진영이 나선 만큼 보수 쪽의 맞불집회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한·중·일 순방은 북한 핵·미사일 위기 해결의 향배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국면에서 이뤄진다.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이 나도록 정부가 사력을 다해야 하는데 사분오열된 여론이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외교·안보의 힘은 국내 여론의 단합된 지지에서 나온다. 외교·안보 분야라고 해서 이견이 없을 순 없겠지만,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시돼야 할 것이다. 진영논리에 빠져 무조건 반대하고 배척하면서 자기 것만 고집하는 것은 정치적 이익에 함몰한 정쟁이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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