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기록물은 200여년간 이어진 한일 교류의 상징

입력 2017-10-31 04:38   수정 2017-10-31 08:39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200여년간 이어진 한일 교류의 상징

외교·여정·문화교류 기록 111건…한일 공동 신청해 등재 성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14책으로 이뤄진 '통신사등록'(通信使謄錄)이라는 고서가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의 통신사 파견 요청, 통신사 파견 준비 절차, 수행원의 직위와 이름, 일본에 전한 예물의 품목, 일본에 도착한 통신사의 보고 내용과 일본에서 바친 진상품 목록이 빠짐없이 실렸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바쿠후(幕府, 무사정권)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이들은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문화교류를 통해 평화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통신사등록처럼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일체의 기록을 아우른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 성공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외교 기록, 여정 기록, 문화교류 기록 등으로 나뉘며 111건, 333점이다.

한국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국립고궁박물관,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63건, 124점을 제출했고, 일본 자료 중에는 48건, 209점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1783년 변박이 초량왜관을 그린 '왜관도'와 신유한이 1719년 통신사로 다녀온 뒤 쓴 '해유록'(海游錄) 등이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조선통신사가 일본 각지에서 일본 인사들과 나눈 필담 기록, 바쿠후가 기증한 그림, 조선이 바쿠후에 보낸 공식문서, 통신사의 모습이 담긴 일본 화가의 그림 병풍도 기록물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양국 중앙 정부가 아니라 민간단체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주도했다. 한국에서는 부산문화재단,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조직한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가 주체가 됐다.

양국은 등재 과정에서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평화'와 '선린외교'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기록물에 전쟁을 경험했던 두 나라가 상대를 존중하면서 교류를 이어간 방법과 지혜가 응축돼 있다는 것이다.

등재 추진 과정에서 나카오 히로시(仲尾宏) 교토조형예술대 객원교수는 "일본·한국이 어떻게 하면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지 진지하게 논의해 왔다. 기록유산 신청이 양국의 교류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조선통신사 기록물에는 당시 사회상과 문화상이 상세하게 담겼다. 300∼500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쓰시마에서 배로 오사카까지 간 뒤 오사카부터는 육로로 도쿄까지 이동했는데, 이들의 행렬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였다고 한다.

손승철 강원대 명예교수는 "조선통신사는 약탈의 시대를 공존의 시대로, 전쟁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바꿨다"며 "이들은 조선시대에 일본에 한류를 퍼뜨린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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