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맞은 국제백신연구소 백남선 박사
삼성서울병원 교수직 떠나 10여년간 국제구호 활동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제3세계 국가에서는 대개 영양실조나 설사 질환, 호흡기 질환으로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선진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죠."
국제백신연구소(IVI) 백신보급사업부장 백남선 박사(56)는 28일 서울대 연구공원 내 연구소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폐렴이나 장염 등 감염성 질병은 백신만 잘 보급돼도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IVI는 감염성 질병으로 고통받는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1997년 10월 9일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이기도 하다.
백 박사는 제3세계 실정에 맞는 백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콜레라 같은 질병은 선진국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에서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하수처리 시설이 없고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도 어려워 백신이 삶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회사 백신은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그림의 떡'이다. 실제 시중에 판매 중인 폐렴 백신의 가격은 도즈(dose·1회 접종분) 당 100∼200달러(11만∼22만5천원)에 달한다.
백 박사는 "이윤 추구가 목적인 제약회사에서는 구매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값싼 백신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저렴한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게 IVI의 사명"이라고 힘줘 말했다. 실제 IVI가 개발한 백신들은 1달러(약 1천130원)대에 보급되고 있다.
창립 20년을 맞은 만큼 성과도 적지 않았다. IVI는 2008년 세계 최초로 저가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개발해 인도와 한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한국 제약사를 통해 생산되는 콜레라 백신 가격은 약 1달러 40센트로 기존 백신 가격의 20분의 1 수준이다.
백 박사는 처음부터 국제기구에서 일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1994∼2001년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제구호단체로 자리를옮겼다.
"처음 의대를 선택한 된 이유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만 40세가 되던 해에 제3세계 사람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기로 했죠."
그는 이후 10여년간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구호단체에 몸담았다.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남수단, 콩고, 아이티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오가며 의료활동을 펼쳤다.
2013∼2015년 IVI에서 활동한 그는 스위스의 구호 단체인 메드에어(Medair)로 자리를 옮겼다가 올해 1월 다시 IVI에 합류했다.
IVI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그는 "에볼라, 콜레라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질병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어떤 방법으로 돕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고민하고 과학적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IVI는 새로운 백신의 발굴과 임상시험, 도입 대상 지역에서의 현장적용을 위한 평가 그리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백신 연구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백 박사는 질병 퇴치 문제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도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중동지역만의 문제로, 에볼라는 아프리카만의 문제로 생각했지만, 국제사회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질병이 더는 남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이 과거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제3세계의 고통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며 "질병 퇴치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달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IVI는 다음 달 15일 연구소에서 창립기념행사를 열 예정이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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