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공관엔 반 백년 세월 고스란히…백범 마지막 보낸 경교장도 가까워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가을을 맞아 서울 한양도성으로 단풍놀이를 나간다면, 성곽 주변 곳곳에 숨겨진 '보석'들도 찾아가 보자.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굴곡진 우리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은 명소가 시민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 서울시장 공관은 이제 한양도성 안내센터
일제강점기에서 미 군정과 관선(官選) 서울시장 시대를 지나 지방자치제가 꽃핀 오늘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인 한국 현대사의 순간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 있다. 바로 종로구 혜화동(창경궁로35길 63)에 자리한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 지어진 목조 건물이다.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였던 하준석이 지었다.
해방 후 1959년부터 20년간은 대법원장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1980년부터 33년간 역대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돼 흔히 '옛 시장 공관'으로 알려졌다.
시는 "이곳은 한양도성 유산 구역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2014년 부지 발굴 결과 한양도성에 직접적인 피해를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에 따라 건물과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해, 철거하기보다는 리모델링 후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2년여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해 새로 단장한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는 1천628㎡ 넓이의 대지에 전시관, 관리실, 순성 안내실 등 3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전시관은 1∼4전시실과 영상실을 갖추고 한양도성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제1전시실은 한양도성·순성놀이·혜화문 등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고, 제2전시실은 시장 공관과 한양도성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제3전시실은 역대 시장 관련 자료·기증품·인터뷰 영상 등을 갖췄고, 제4전시실은 시장 공관 건축 연혁과 한양도성 관련 도서를 마련했다.
영상실에서는 공관 관련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영상과 서울시장 연표를 볼 수 있다.
특히 전시관 1층에는 카페가 마련돼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 한 잔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전시·안내센터 입구에는 한양도성 탐방객을 위한 순성안내실이 자리하고 있어 인근 백악·낙산 구간 지도 등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가을을 맞아 이달 11일 이곳에서는 혼성 2인조 아코디언 그룹 '프리'(free)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코디언 공연도 펼친다.
◇ 민족의 아픔 간직한 딜쿠샤와 경교장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5호선 서대문역 사이쯤, 사직로에서 한 발짝 벗어난 행촌동 주택가 한가운데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붉은색 벽돌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미국 AP 통신 특파원으로 한국에 머물던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지은 가옥 '딜쿠샤'다. 테일러 부부는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그는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제암리 학살사건 등을 전 세계에 최초 보도한 인물로, 스코필드·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조선 총독을 찾아가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 항의하기도 했다.
가옥의 이름 딜쿠샤는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이상향'이라는 뜻이다. 붉은 벽돌의 사각형 2층 저택(총면적 624㎡)으로, 건축 당시 양식을 엿볼 수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딜쿠샤는 5월 문화재청 등록 예고를 거쳐 8월 정식으로 문화재가 됐다.
앞서 서울역사박물관은 작년 말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L. 테일러로부터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은 바 있다. 여기에는 내부 모습을 담은 사진 앨범을 비롯해 회화· 도서·의상·공예품 등이 포함돼 있어 가옥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아직은 딜쿠샤 내부를 둘러볼 수는 없지만, 성곽 바깥 마을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아울러 외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곳은 3·1 운동 100주년인 2019년까지 복원돼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딜쿠샤에서 사직로를 건너 월암근린공원과 경희궁을 따라 내려오면 강북삼성병원 부지 안에 자리한 경교장(京橋莊)을 만날 수 있다.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인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 암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곳이다. 1945년 임시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김구 선생 서거 후 미군 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쓰이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사들였다. 3년여의 복원 작업을 거쳐 2013년 3·1절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2층 집무실 복도에서는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이 재현돼 있다. 임시정부 회의가 열린 '응접실', 임시정부 대외 홍보를 담당한 '선전부 사무실', 공식 만찬이 열린 '귀빈 식당' 등이 고스란히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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