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2∼3년 전부터 이 길로 가는 게 맞는구나. 그 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길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故) 김주혁이 지난달 tvN 드라마 '아르곤' 종영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몇 년 전 MBC 드라마 '구암 허준'(2013), MBC '무신' 등 사극을 내리찍으면서 한동안 깊은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예능 출연 등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연기가 나의 길'임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 뒤부터는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연기활동을 펼쳤고,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기에 늘 목말라하던 그는 매번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장르로 시청자와 관객을 찾아갔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나는 일이 없지?', '왜 나에게는 기회가 안 오지?'라고 말하는 후배들이 제일 한심합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를 해야 기회가 온다고 말하죠. 연기에 대한 열정은 체력에서 나오니까, 체력을 키워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하고, 배우로서 감성을 유지하도록 항상 훈련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배우들은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그 상황을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면서 "저 역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조차, '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렇구나' 생각했다. 또 조문 온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며 이럴 때는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생각했다. 아마 직업병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연기 열정이 넘쳤던 그가 유작 2편을 남겼다. 내년 개봉을 앞둔 영화 '흥부'와 '독전'으로, 김주혁은 자신의 분량 촬영을 모두 끝낸 상태였다.
고전 흥부전을 재해석한 '흥부'(조근현 감독)는 조선 헌종 재위 당시 양반들의 권력다툼으로 백성의 삶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환난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다. 김주혁은 어지러운 세상에 맞서며 백성을 돌보는 정의로운 양반 조혁을 연기했다.
그는 제작발표회 당시 "전작들과 결이 다른 백성을 돕는 지혜로운 양반 조혁 역을 맡아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떠올렸다.
'독전'(이해영 감독)은 대한민국 최대 마약조직의 정체불명 보스 이 선생을 잡기 위해 형사 원호가 이선생 조직의 멤버 락과 손을 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주혁은 중국 마약시장의 거물 하림역으로 출연했다.
최근 크랭크인한 영화 '창궐'(김성훈 감독)에서도 이청(현빈)의 형으로 특별 출연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총 3∼4회 분량 중 1회 촬영만 마친 상태라, 그의 역할은 다른 배우로 대체될 전망이다.
그와 함께 일했던 영화계 관계자는 "김주혁은 굉장히 친절하고 섬세한 배우였고 가식이 없는 배우였다"면서 "아직도 그가 숨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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