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 보고픈 것만봤다"…개인숭배자들만 모아 언로탄압 통치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얀마 최고 권력자인 아웅산수치 국가자문역에게 국제사회가 농락을 당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개발국의 인권신장, 민주화에만 집착해 서방이 성급한 우상화에 나서고 있다는 자성론까지 제기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간) '아웅산수치에게 세계가 잘못했나'라는 제하의 해설기사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전했다.
수치의 정당이 2015년 집권했을 때 수치는 미얀마 국민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인도하면서 엄청난 고난을 감내한 정치적 성자로 그려졌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수치에게 찬사를 보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한 때 수치를 간디와 비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수치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 로힝야에 대한 군부의 야만적 탄압을 방관한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한몸에 받고 있다.
NYT는 "수치의 추락과 같은 사례는 사실 자주 있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서방 지도자들이 불안정한 새 민주주의 국가의 독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영웅적 희생을 치른 인물, 특히 활동가들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진단이다.
NYT는 "정치적 변화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열정에서 서방 지도자들은 그들의 영웅이 지닌 결점을 간과하고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직면할 난제를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미 경고음이 있었음에도 서방에서는 수치의 성향을 묵과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치는 2013년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로힝야족을 향한 폭력이 증가하는 상황에 관한 질문을 묵살했다.
그는 불교도들이 무슬림 때문에 거주지를 잃었다고 항변하며, 무슬림 피해자가 왜 더 많냐는 질문에는 불교도들이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힘 때문에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답변했다.
수치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으나 서방은 이를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대니엘 루프턴 콜게이트대 정치학 교수는 "우리가 자꾸 외국 지도자들을 이상화하거나 악마화하는 상황에 빠진다"고 말했다.
루프턴 교수는 "정치 심리학에 '확증편향'이라는 게 있다"며 "이는 결과에 대한 미리 결정된 믿음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무의식적으로 골라 수용하고 어긋나는 정보는 배척하게 된다.
NYT는 수치가 현재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수준은 아니더라도 독재자들의 성향을 노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원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을 재빨리 배척한 점이 먼저 지목됐다.
민주화 시민단체인 88세대집단의 활동가 우얀묘 테인은 "수치는 자기 측근들의 말만 듣는다"며 "수치 개인숭배자들이 '이너서클'이며 이는 독재자의 특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찬사가 고조될 때도 미얀마 내부에서는 수치가 권력을 집중화하고 비판을 탄압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시민단체 파웅쿠의 대표인 쿄투는 "수치 정권은 민주주의의 아이콘이라고 하면서도 권력을 혼자 틀어잡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며 "정부 의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정권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NYT는 군부통치 때 반체제 인사들이 투옥된 것과 똑같이 수십명이 수치정권 하에서 정부 비판을 제약하는 법 때문에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호주 시드니의 로위연구소 연구원인 애런 코넬리는 "그런 조치를 보면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통치 성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코넬리는 굳이 로힝야족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치라는 인물이 원래 자유민주적인 지도자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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