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력 높아 피해 키운 데다 차체 단단해 구조 시간 지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배우 고(故) 김주혁씨가 탄 벤츠 SUV '메르세데스 벤츠 G클래스'는 흔히 '지바겐(G Wagen)'으로 불리는, '벤츠의 얼굴'이라고 할 만한 차량이다.
원래 군용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민수용으로 바꿔 내놓은 것으로 가속력과 힘이 강하고 단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바겐의 특징이 김씨 사고 때는 역설적으로 피해를 더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5일 사고 당시 다른 차량에 찍힌 블랙박스 영상과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김씨의 차량이 앞서 가던 그랜저 승용차와 부딪힌 사고는 비교적 경미한 수준이었다.
피해가 커진 것은 1차 사고 직후 급가속한 김씨 차량이 도로 턱을 넘어 벽에 충돌하고 뒤이어 인근 아파트 쪽 계단을 굴러 전복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차량이었다면 사고 직후 가속을 하더라도 가속력과 힘에 한계가 있어 수십m 정도 구간을 달려 도로에서 인도로 오르는 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김씨 차량은 운전석 앞바퀴 휠이 깨진 채로 발견됐는데, 이 휠은 턱을 넘는 과정에서 깨졌을 것이라는 게 경찰과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턱을 넘은 뒤 벽과의 충돌에서 가장 큰 충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벽에 부딪혔을 때도 가속력이 높은 만큼 충격도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끼리 충돌했다면 충격 에너지를 나눠 받지만 고정된 벽과 충돌하면 그 에너지를 100% 직접 받게 된다"며 "차량이 어느 부분부터 어떻게 벽과 충돌했는지에 따라 차량에 주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에서 운전자 보호에 핵심이 되는 부품 중 하나가 앞유리와 옆유리 사이 A필러인데, 이 부품은 가장 강하게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약 A필러가 충격에 견디지 못하면 지붕이 무너져내려 위험하게 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경찰도 현장조사 등을 통해 차량이 아파트 벽에 충돌했을 때 어떤 형태였는지 등을 알아보고 있다.
지바겐 차체가 유달리 단단한 것도 사고 후 김씨를 구조하는 데 영향을 줬다.
교통사고가 나면 구조대원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유압 장비로 차량을 절단하고서 탑승자들을 바깥으로 끌어내 응급조치를 하게 된다.
하지만 김씨 사고 당시에는 지바겐 차체가 워낙 단단한 탓인지 유압 장비를 이용했는데도 절단이 잘 안 돼 구조에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것이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구조 시간이 30분 이상 걸린 주된 이유는 김씨의 신체가 찌그러진 차체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도 "차체를 절단하는 데도 다른 차량보다 시간이 더 걸려 구조가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도 "지바겐의 차체는 더 두껍고 밀도가 높은 강판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절단이라도 빨리 됐다면 구조 시간이 단축됐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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