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직접 제정…행복추구·자유발언 보장하고 점수 따른 차별금지
수업시간 스마트폰 사용엄금…"교사에 대한 '이유없는 반항' 존중 못 받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학생들의 시민의식이 생각보다 유치하거나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때 공동체 구성원이 힘들어지거나 기뻐하는지 학교생활로 체득했기 때문에 계기만 주어지면 정돈된 언어로 이를 표현한다."
서울 금천구 독산고등학교에서 '법과 정치' 과목을 가르치는 신기숙 교사는 5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페이스북을 통해 '독산고 2학년 4반 교실헌법'을 소개하며 "정말 인상 깊다. (다른 학교로)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올해 9월 제정된 이 교실헌법은 신 교사 제안으로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교육청이 추진할 학생 인권 증진방안을 망라한 '학생인권종합계획'을 공개했다.
종합계획에는 학생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기기 사용과 소지품 검사·압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머리카락·용모단속 등 생활지도 기준도 수립하기로 했다.
학교운영과 학칙 제정 등에 학생참여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런 종합계획이 발표되자 수업시간에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학생이 늘어나고 '학생답지 못한' 꾸밈을 한 학생에게 교사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교육 당국이 학생 인권만 찾다간 학생들 '고삐'가 풀려 학교가 '개판'이 될 것이라는 거친 반응도 나왔다.
'독산고 2학년 4반 학생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담았다는 교실헌법 사례에 비춰보면 이런 우려는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교실헌법은 학생들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학급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권리를 보장했다. 교실헌법답게 성별이나 외모 등은 물론 성적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명시했다.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학급회의를 소집해 해결방법을 논의하고 도움을 요청할 권리를 부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학생들이 지켜야 할 의무는 권리보다 더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교실헌법에 따르면 학생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을 행사해서 안 되며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성적 발언이나 소위 '패드립', 인신공격은 학교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수업시간 휴대전화 사용도 '교사가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때를 빼고는 일절 금지한다'고 규정됐다. 특히 허락 없이 휴대전화를 쓴 것에 대한 학교와 교사의 정당한 조치에는 학생이 반발·저항을 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화장이나 고데기 등을 활용한 머리 손질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사용과 같은 수준의 규제가 적용된다.
교실헌법은 '교사와 학교의 교육적 판단은 존중해야 하며 정당한 지시에 대한 근거 없는 저항은 존중받을 수 없다'고 적시해 교권도 보장했다.
물론 이런 내용이 모두 완벽하게 지켜지기는 쉽지 않다.
언어폭력을 가하지 말자는 규정은 잘 지켜지지만, 수업시간 중 스마트폰에 습관적으로 손대는 학생들은 여전히 있다고 신기숙 교사는 전했다.
하지만 신 교사는 "(교실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스마트폰 사용을 제재한다고 해서 학생과 실랑이가 생기지 않는다"면서 "교사가 '우리가 합의해 만든 규칙이니 스마트폰을 넣어라'고 말하면 이를 이해하고 자동으로 이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실헌법을 제정한 2학년 4반 학생들은 말썽도 잘 피우는 평범한 아이들"이라면서 "다만,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한 교실 안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본다"고 덧붙였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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