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잇단 '윽박'에 경총·전경련 '얼음'…재계 대변인 '실종'

입력 2017-11-05 06:47  

정부 잇단 '윽박'에 경총·전경련 '얼음'…재계 대변인 '실종'

재계 현안에 성명조차 꺼려…김상조 '경고'에 경총은 노조 파트너役 뺏길 수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최근 재계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근로시간·세금 등 전방위에서 기업 부담이 너무 큰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한다"며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만, 이런 목소리를 모아 정부와 사회에 전달할 '창구'가 없어 더 답답한 처지다.

청와대와 정부가 잇따라 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을 공개적으로 질타하면서, 재계 입장을 대변해야 할 이들 단체가 눈치만 보며 수개월째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김상조 위원장, 연일 "경총 제 역할 못 해" 질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5대 그룹 전문경영인과의 간담회에서 노사 관계를 언급하며 "사용자단체의 역할이 실종된 것 아닌가 큰 아쉬움이 있다. 사용자단체가 정부나 노조의 입장을 무조건 따라오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사용자단체가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건전한 대화의 파트너로 제자리를 잡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의 역할 분담을 고려하면, 노사정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 등에 참여해 사용자(기업) 측 입장을 전문적으로 대변해온 경영자총협회(경총)를 지목한 질타로 해석된다.

이뿐 아니라 김 위원장은 바로 뒷날 3일 서울대 금융경제세미나 수업에서도 "(노사정위에) 제대로 된 사(使)가 빠져있다. 기존 경총과는 다른 새로운 사용자단체의 탄생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에 대해 공정위가 "경총이 사업자단체로서 역할을 정확히 하여 노사정 관계가 복원되기를 촉구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어쨌거나 김 위원장이 이틀에 걸쳐 공개적으로 현재의 경총을 비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잇단 질책에 경총 내부에서는 '혹시나 전경련과 함께 해체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경총은 앞서 지난 4, 5월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가 한 차례 큰 '역풍'을 맞은 터라, 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당시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고, 당장은 효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다.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라고 말하는 등 새 정부 일자리 정책에 잇따라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경총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질책'에 가까운 지적을 받았다.




◇ 몸 사리는 경총…한국노총도 '경총 패싱' 조짐

경총의 활동은 이후 급격하게 위축됐다.

6개월 사이 통상임금, 최저임금,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 굵직한 재계 현안이 쏟아져도 공개적으로 재계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총은 지난 2015, 2016년 최저임금 관련 모두 8건의 보도자료를 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지만, 올해의 경우 '2018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경영계 입장' 한 건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슈에 대한 성명이나 코멘트도 '최소한'으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정부가 전경련과 함께 경총까지 배제하고 사실상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만을 경제단체로 인정하고 소통하면서, 수십 년간 경총과 협상 파트너 관계였던 노조까지 경총을 '건너뛰는'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여의도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주영 위원장과 '호프 미팅'을 갖고 '사회적 대화 복원'을 논의했다. 노사 관계 협상에 특화한 경제단체인 경총의 입장이 무색해지는 장면이었다.

지난 9월에도 김주영 위원장은 13일 대한상의를 먼저 방문한 뒤 18일에야 경총 박병원 회장을 찾았다.

이런 분위기와 김상조 위원장의 잇따른 경고로 미뤄, 향후 노사정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대한상의에 밀려 경총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전경련, 여전히 존립 불투명…"민간 경제단체 압박 지나쳐" 지적도

전경련은 여전히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지난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215명에서 현재 110명 정도로 40% 넘게 줄었다.

삼성·포스코·현대차·SK·LG 등 회원들이 잇따라 탈회하면서 몸집(회원사 수)도 600여 개에서 400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경련은 이름을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는 등 정관 변경을 통해 '부활'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 새 정관을 심의·의결할 이사회나 총회 일정조차 잡지 못한 형편이다.

더구나 재계에서는 산업부가 정관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동안 법인 설립 목적 외 사업으로 공익을 해쳤다'는 판단에 따라 아예 설립허가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처지가 이렇기 때문에,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보고서 등을 통해 최저·통상임금,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 현안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인수·합병(M&A) 규제 완화나 외국인 투자 활성화 필요성 등 통상적 주제의 분석 보고서로 '변죽'만 두드리는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경제단체에 대한 정부의 압박 정도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총이나 전경련 모두 성격이나 법적으로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조직한 민간 법인"이라며 "정부 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 민간단체·법인에 대해 정부가 노골적으로 질타하거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 정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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