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레 소잉카 "절망하지 않기 위해 문학에 기댄다"

입력 2017-11-04 20:20  

월레 소잉카 "절망하지 않기 위해 문학에 기댄다"

고은 "시를 확신하자"…아시아문학페스티벌서 대담




(광주=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시인 두 명이 마주 앉았다. 고은(84) 시인과 나이지리아 시인 겸 극작가 월레 소잉카(83)가 4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콘퍼런스홀에서 특별 대담을 했다.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 행사였다.

고은과 소잉카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그 투쟁 경험을 문학작품으로 남긴 공통점이 있다. 소잉카는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방송을 하고, 내전 중단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가 2년 가까이 투옥됐다. 감옥에 있는 동안 쓴 글을 나중에 '감옥으로부터의 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198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잉카는 대담에 앞서 한 기조강연에서 "시는 권력의 안티 테제이자 경계선의 부정"이라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소명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상공 전역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시점에 최초의 아시아 문학축제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아주 시기적절하다"며 "역사적 상흔이 개선되고 역사와 유산, 정체성의 회복을 통해 긍정적 변화로 바뀌고 있음을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고은과 소잉카의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 실례를 무릅쓰고 소잉카 선생의 인상에 대해 말하고 싶다. 깊은 산중 절간의 한쪽은 청산, 다른 한쪽은 흰 구름이다. 청산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승려들이 살고, 흰 구름 쪽에는 나그네가 머문다. 둘이 합해서 아름다운 하나의 세계가 이뤄진다. 청산은 변함이 없고 백운은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구름이다. 소잉카 선생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세상을 초월한 듯한 인상이다.(고은)

▲ 우리가 서로 교류한 지 벌써 수년이 됐다. 고은 선생 같은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건 기쁨이다. 문학도 구름과 비슷하다. 구름이 대지에서 수분을 흡수하듯, 문학도 땅으로부터 흡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고 있다. 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이다. 자연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의 공통 기반이 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자축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문학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인간의 감성에 자연을 통합시켜서 접근한다. 그것은 한국 시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자, 아프리카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경향이다. 아프리카는 전통유산을 많이 약탈당했다. 한국이 과거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고 아프리카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월레 소잉카)




-- 서구문학이 늘 이야기하는 보편성은 동일성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유럽의 공간은 구별되기 힘들다. 피레네 산맥부터 우랄 산맥까지 말을 달릴 수 있는 대평원이다. 유럽의 모든 도시는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모든 곳이 똑같은 체제다. 반면 아시아는 복잡하다. 종교와 사상이 얼마나 많은가. 신이 몇백만인지 모른다. 언어와 인종도 다양하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곳이 아시아다. 아시아문학을 서구문학처럼 말할 수 없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강력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앞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이 덜 성숙한 곳에서 문학성이 발화해 미래 세계문학의 가능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영광은 반드시 흥망성쇠가 있다는 얘기다.(고은)

▲ 아프리카 대륙에서 젊은 여성 작가들이 대두하고 있다. 굉장히 반가운 변화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문학에 기대는 이유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치적 지형의 어지러움으로 인해 문학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반면, 문학이 부상하면서 비판과 반대가 나오기도 한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종교적 근본주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보코하람을 직역하면 '책은 죄악'이라는 뜻이다. 창의적인 동력이 발현되는 가운데 작가와 독자들에게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문학의 생산성이 증대된 데 대한 반작용이다.(소잉카)

-- 지금이 세계문학의 황금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예언자적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문학은 우리 문화현상에서 가장 먼저 설정된 개념이다. 지금은 미디어에서도 문학을 다른 분야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이런 것이 시가 얼마나 멀어져가는지를 증명한다. 1934년 이미 영국에서 '시는 끝나리라'라는 예언이 나왔다. 그런데 아직 시가 죽을 이유가 없다. 시는 항구적인 별처럼 존재한다. 우주 전체의 운율과 파동, 파도와 바람이 모두 시적인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춤을 잘 추는 것도 우주의 율동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임과 떠난 임, 물과 술, 희로애락이 있는 한 시는 사라질 리가 없다. 소잉카와 더불어 시를 확신하자.(고은)





▲ 두려움의 존재가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하나의 예술 형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영화가 생겼을 때 연극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문학이 계속되고 있다. 경계는 필요하다. 경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두뇌가 도전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를 강화해 창의력을 말살시킬 때 문제가 된다. '종교적 경계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은 말살되도 상관없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한다. 경계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 경계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 여러 문화적 경계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가능해진다.(소잉카)

-- 특수성과 보편성 모두 맹신해서는 안 된다. 서구 작가들이 더러 '한국 문학이 세계적 보편성에 더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올더스 헉슬리가 '보편성은 어린애와 같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보편성은 문학에 중요한 가치이지만, 세계를 점령하고자 하는 보편성이 되면 안 된다. 서로 차이가 있으니까 만나서 우애를 맺고 연대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보편성에서 새로운 특수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어떤 보편성도 특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게 오래되면 보편성이 된다.(고은)

▲ 보편성이 때로는 허구일 수 있다. 사고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조작의 기제일 수 있다. 특수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 언어로 표출될 때 보편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다.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세계를 하나의 축으로 보고 나누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지배에 대한 욕구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남북한의 상황을 보면, 북한도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작가들이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고 계속 쓰기 바란다.(소잉카)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