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혁명 100주년]① 첫 사회주의국가 실험…기념행사 차분

입력 2017-11-06 07:00   수정 2017-11-06 21:55

[러시아혁명 100주년]① 첫 사회주의국가 실험…기념행사 차분

정부 차원 행사 거의 없어…'혁명 기념일'도 '국민통합의 날'로 대체

애국심 고취 군사퍼레이드만…"경제난 불만 민심 폭발 우려" 지적도

[※편집자 주 = 전 세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인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이 성공한 지 7일로 100주년을 맞습니다.

노동자·농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한 볼셰비키당(사회민주노동당: 러시아 및 소련 공산당의 전신)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 건설 시험에 착수한 지 한 세기가 지났습니다.

1991년 소련 몰락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종언을 고했다는 주장과 함께 글로벌화의 폐단과 국제금융위기 등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와 이를 기념하는 현지 분위기, 혁명 지도자 레닌 시신 매장을 둘러싼 논쟁, 러시아 공산당 의원 인터뷰 등 3건의 특집 기사를 나눠 송고합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1917년 2월 300여 년을 존속한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억압과 빈곤에 지친 민중 봉기로 무너졌다.

2월 혁명이었다. 사회민주노동당의 급진파인 볼셰비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은 그해 4월 망명 중이던 스위스에서 독일제국이 제공한 봉인열차를 타고 귀국해 노동자·농민·병사들이 중심이 된 지지 세력을 키운 뒤 10월 혁명으로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다.

10월 25일 저녁때까지 제정 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반혁명 세력 거점이 대부분 적위대의 손에 떨어졌고 이튿날인 26일 새벽 2시 마침내 임시 정부 청사인 겨울궁전이 점령됐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노동자·농민·병사들의 대표자 회의)로'라는 구호를 내건 볼셰비키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쓰는 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11월 7~8일 사이에 일어난 혁명이었지만 당시 러시아가 쓰던 구력(율리우스력)으로는 10월 25~26일에 해당해 '10월 혁명'으로 불린다.






10월 혁명 후 들어선 사회주의 공화국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벨라루스·캅카스 지역 공화국들이 가세하면서 1922년 탄생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은 1991년 붕괴할 때까지 약 70년을 존속했다.

인류 최초의 실험인 사회주의 혁명이 100주년을 맞았지만 이를 기념하는 러시아의 분위기는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차분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러시아 정부 차원의 특별한 행사는 계획돼 있지 않으며 공산당이 주도하는 몇몇 기념행사만이 열리고 있다.

러시아 공산당과 좌파 정당들은 7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가두 행진과 집회 등의 혁명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행사에는 중국, 쿠바, 베트남, 북한 등 120여 개국 공산당 대표단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2~3일에는 혁명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19차 공산당·노동당 국제대회가 개최됐다.

대회에 참석한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부위원장 이반 멜니코프는 "역사의 추가 흔들리고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에서 멀어져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 대규모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 수립 가능성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르멜로 수아레스 스페인 인민당 사무총장도 "근년 들어 국제금융위기로 임금이 떨어지고 교육과 의료의 민영화가 추진되는 등 노동계급의 삶이 악화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공산당 사무총장 로버트 그리피트스도 "소련 붕괴 후 공산주의는 사망했다고들 말했지만 지금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 부활과 성장을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혁명 기념행사에 심드렁한 분위기다. 공산당 주도 행사를 승인하긴 했지만, 특별히 지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10월 혁명 기념일'을 폐지하고 '국민통합의 날'이란 국경일을 제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11월 4일인 국민통합의 날은 17세기 초 러시아 의병대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군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날로 외세에 맞선 러시아 국민의 단결을 되새기자는 취지의 국경일이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모토로 대서방 강경 노선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혼란을 부추기는 서방에 맞서기 위한 국민적 통합 필요성을 역설해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통치 이념을 뒷받침하는 결정이었다.

7일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앞 붉은광장에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펼쳐졌던 군사퍼레이드를 재현하는 열병식이 5천 명의 군인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소련은 모스크바로 진격해오는 독일 나치군과 전쟁을 치르던 중인 1941년 11월 7일 군인과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해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벌인 바 있다.

제정 러시아의 전제 권력을 무너뜨린 민중 혁명을 기념하는 대신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 국민과 군인들의 영웅적 애국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 우크라이나 사태·시리아 내전 등으로 서방과 최악의 갈등을 겪는 현 상황에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사다.

일각에서는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행사에 러시아 정부가 미온적인 이유도 서방제재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악화한 경제난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민심이 혁명 기념 분위기를 타고 반정부 시위 등으로 분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4기 집권을 보장해줄 내년 3월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크렘린 궁으로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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