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론자 "푸틴 대통령이 결정 내려야"…공산당 "법적 근거없다" 반대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 100주년을 맞아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시신 매장 논쟁도 재가열됐다.
레닌의 시신은 사망 후 9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앞 붉은광장의 대리석 묘안에 방부 처리된 채 영구 보관돼 있다. 레닌 묘는 모스크바의 관광 명소 가운데 하나로 평소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크렘린에 충성하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먼저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슬람 공화국인 체첸을 다스리는 카디로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레닌 시신 매장을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공산당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아직은 레닌 시신을 매장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대통령과 상·하원이 함께 결정을 내리거나 국민투표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당수 겐나디 쥬가노프는 "현행법상으로 레닌 시신 매장 문제는 가까운 유족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지만 유족들은 매장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의견을 희롱하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레닌 시신 매장은 크렘린 행정실의 현안이 아니다. 아직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가 당장 매장을 추진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의장도 레닌 시신 매장은 이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나 가능하다는 견해를 표시했다.
지난 1924년 1월 레닌이 53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권력 장악에 나선 이오시프 스탈린은 민심 결집을 위해 유족들의 반대에도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구보존하는 조처를 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선 시대적 의미를 잃은 레닌 묘를 철거하고 영구 보존 처리된 레닌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소련이 무너진 1991년 이후 레닌 묘를 폐쇄하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공산당원을 비롯한 레닌 숭배자들의 강한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2009년에는 러시아 하원이 레닌 시신 매장 문제를 논의했으나 역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올해 4월에도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과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 소속 의원 6명이 레닌 시신 매장 법안을 하원에 제출했으나 공산당 등의 반대로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공산당은 법안 발의에 대해 "도발"이라고 반발하면서 매장 추진 시 대규모 사회·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 상반기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0%가 레닌 시신 매장에 찬성 견해를 밝혔지만 반대 진영의 목소리도 만만찮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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