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때 사라진 남편 37년 기다린 최정자씨 "제발 흔적이라도"

입력 2017-11-06 10:48   수정 2017-11-06 16:40

5·18 때 사라진 남편 37년 기다린 최정자씨 "제발 흔적이라도"

37년 전 시위현장 대인광장서 소식 끊겨 "남편 비석이라도 세웠으면"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내가 살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남편 비석이라도 하나 세우고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때 사라진 남편 정기영(당시 43세)씨를 37년째 기다리는 최정자(72)씨는 6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한 보따리 눈물을 쏟아냈다"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5·18 행방불명자를 찾기 위해 옛 광주교도소 근처를 발굴한다는 소식에 최씨는 남편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과 함께 과거의 아픈 기억도 다시 돌아왔다.

부부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 버스터미널 근처 한 여관건물 1층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최씨가 먼저 광주에서 터를 잡았고 서울사람인 남편은 1980년 1월 광주로 내려왔다.

남편은 그해 5월 20일 점심시간 직후 식당 풍로(風爐)에 넣을 석유를 사러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함께 거리로 나섰던 여관주인은 최씨에게 '대인광장에서 시위대랑 공수부대가 충돌했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정씨와 헤어졌다'고 전했다.

당시 광주에는 7·11공수에 이어 3공수여단 5개 대대 병력이 증파됐다.

계엄군은 이날도 어김없이 대인광장에서 이어지는 금남로와 전남대 등 도심 곳곳에서 유혈진압을 벌이고 있었다.

대인광장과 금남로는 최씨 부부의 식당과 엎드리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최씨는 "반미치광이가 돼 온 시내를 떠돌아다니며 남편을 찾았다"며 "차라리 어디에서 다쳐왔다면 낫기라도 했을 텐데"라며 마른 울음을 삼켰다.

그는"5·18 때 광주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지금껏 법적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조차 못했다"고 한탄했다.

최씨는 "남편 묘소도·비석도 없어서 우리 가족은 해마다 5·18이 와도 갈 곳이 없다"며 "제발 흔적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간절히 호소했다.


5·18기념재단은 이날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 재소자 농장 터에서 암매장 추정지 발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5월 단체는 1980년 항쟁 당시 전남대에 주둔했던 3공수가 21일 오후 퇴각하며 민간인 100여명을 교도소로 끌고 가 구타와 가혹 행위로 다수를 살해, 암매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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