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부상자 교도소 이송차 문 열자 2∼3명이 밟혀 죽어 있어"

입력 2017-11-06 17:08  

"5·18 부상자 교도소 이송차 문 열자 2∼3명이 밟혀 죽어 있어"

5·18 계엄군 "호송된 후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이미 악취나고 부패"

5·18기념재단, 옛 광주교도소 발굴 현장에서 검찰 조사 기록 공개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면서 비좁은 차량에서 부상을 당해 쓰러져 밟히고 질식해 죽었을 것입니다."

6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 발굴 현장에서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당시 검찰 조사 기록에는 교도소 이송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무참히 숨졌을 정황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재단은 이날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돼 옛 광주교도소에서 주둔한 3공수여단 김모 소령이 1995년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조서에는 계엄군이 부상당한 시민들을 광주교도소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비좁은 차량에 갇혀 숨졌을 것이라는 김 소령의 진술이 나와 있다.

김 소령은 조서에서 "비좁은 방송 차량에 30여 명의 시위대를 태웠기 때문에 부상을 당해 힘이 없는 시위대는 쓰러져 밟히고 질식해 죽었을 것이다. 차량이 부족해 비좁은 방송차에 너무 많은 인원을 빽빽이 태웠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한 차량 문을 열었을 때 2∼3명이 밟혀 죽어 있었다"며 "나머지 사망자는 교도소로 이동 중에는 사망하지 않았으나 호송된 후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시위대가 포함됐을 것이다"고 털어놨다.

교도소 주둔 기간 암매장 정황에 대해서도 상세히 진술했다.

김 소령은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 중 사망한 3명을 포함해 광주교도소에 있는 동안 12구의 시체를 가매장한 일이 있다. 5월 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이 걸렸다"며 "병력이 시체를 운반해왔을 때는 가마니로 쌓여 있었는데 악취가 심하게 나서 상당히 부패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참모로부터 여단장의 지시를 전달받아 가매장 장소를 물색했고, 저희 본부대 병력이 의무대로 가서 사병 5∼6명과 함께 매장했다"고 덧붙였다.

암매장 위치에 대해서는 "야산과 논이 보이는 방면의 담장 3m 지점에 가마니로 2구씩의 시체를 덮어 같은 장소에 연결해 묻었다"고 밝혔다.

재단은 김 소령의 검찰에 남긴 진술과 약도 등을 토대로 옛 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 재소자 농장 터를 암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cbebo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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