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산 작가 세 번째 장편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아직 우리에게 낯설고 두려운 유전자 변형과 돌연변이의 세계가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 문학작품이 나왔다.
소설 '코끼리는 안녕', '게으른 삶' 등으로 주목받은 작가 이종산의 새 장편소설 '커스터머'(문학동네)는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커스텀'이 보편화한 미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유전자 조작으로 빚어진 선천적인 돌연변이들이 후천적으로 신체 일부를 변형한 커스터머(커스텀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사람들)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신비로운 세계다.
소설은 대략 150년 후의 미래 세계를 그린다. 지구에 큰 모래 폭풍이 덮친 뒤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재건한 삶의 터전은 계급에 따라 부유하고 깨끗한 태양시와 비취시, 모래와 먼지가 많아 하층민이 사는 '모래시'로 나뉘게 됐다. 소설의 주인공인 모래시 출신의 소녀 '수니'는 처음 시행되는 통합교육정책에 따라 태양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배정돼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
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룸메이트 '안'은 비취시 출신의 중성인이다. 돌연변이인 중성인은 신체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지녔는데, 수니는 안의 독특한 매력에 반해 금세 사랑에 빠진다.
수니는 머리색깔, 얼굴 모양, 피부색, 다리 길이 등 신체의 생김새를 바꾸는 것은 물론, 새의 날개나 물고기 지느러미, 꽃이나 나무 등을 몸에 영구적으로 이어붙이는 '커스텀'의 세계에도 매료된다. 꿈에 나온 인어 이미지에 매혹된 수니는 비싼 가격의 지느러미를 달려고 시내 커스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하고, 이곳에서 좋은 동료들과 멋진 커스터머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이마에 뿔이 나기 시작하고, 수니는 자신이 돌연변이임을 알게 된다. 한편, 태양시에서는 돌연변이와 커스텀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커스터비아'들이 끔찍한 혐오 범죄를 일으켜 수니를 떨게 한다.
이 소설은 유전자 변형을 둘러싼 문제를 신선한 관점으로 접근했다. 엄청난 재난 이후 인류가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가정한다. 또 유전자 조작이 주로 부정적으로 다뤄진 것과 달리, 커스텀이란 문화를 통해 인간이 타고난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다양성이 꽃피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과 갈등이 있긴 하지만, 소수자로 핍박받던 돌연변이들은 커스텀이 대중화하면서 그 차별성이 흐려진다.
처음에는 다소 기괴하게 다가오는 커스텀의 세계는 이야기 속에서 점점 매혹적인 빛깔로 펼쳐져 독자의 거부감을 녹인다.
십 대 소녀의 첫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린 문장들은 SF적 상상에서 비롯된 독특한 서사를 부드럽게 풀어놓으며 독자들의 딱딱한 머리와 가슴을 살포시 파고든다.
"지구와 달이 서로를 끌어당겨서 파도가 일어난다. 나는 끌림에 대해 생각했다. 안과 나는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 둘 사이의 중력이 내 안에 물결을 만든다. (중략)// 언젠가 내가 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매일 너에게 날아갈 거야. 그 말을 얼른 안에게 하고 싶었다. 나는 달렸다. 나를 끌어당기는 방향을 항해." (본문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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