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대규모 숙청, 수도까지 날아온 미사일, 레바논 총리의 사퇴 등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를 둘러싸고 동시에 터진 사건들은 우연일까.
따로 흩어지는 독립된 사건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파동의 방향은 결국 이란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BBC방송은 6일(현지시간) 해설했다.
지난 4일 중동에서는 사우디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사우디를 방문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암살 위협을 이유로 전격 사퇴했다.
하리리 총리는 "불행히도 이란이 우리 내정에 개입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로부터 몇 시간 뒤 사우디는 수도 리야드에 접근한 예멘 반군 후티의 탄도미사일을 격추했다.
같은 날 모하마드 빈살만(32) 사우디 제1왕위계승자(왕세자)가 왕권 경쟁자와 반대파로 분류되는 왕자, 전·현직 장관 수십 명을 부패척결이라는 이유로 체포, 감금했다.
언뜻 보기에 이 세 가지 사건은 각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BBC방송은 이들 사건이 중동 내 수니파 큰형 사우디가 앙숙으로 삼는 시아파 맹주 이란과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바논은 크게 수니파, 시아파, 마론파 기독교계가 권력을 균점하는 독특한 통치 방식을 유지하는 국가인데, 하리리 총리는 수니파의 지원을 받아 왔다.
하리리 총리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지속적으로 경쟁하거나 대립해 왔는데, 지난해에는 헤즈볼라와 손잡은 미셸 아운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결과로 내각을 꾸릴 수 있었다.
BBC는 레바논에서 정치적 균형이 깨지고 헤즈볼라와 시아파 세력이 영향력을 키워가자 사우디가 하리리 총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관측했다.
특히 하리리 총리가 3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의 국제문제 자문인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를 면담한 것을 결정적 '미운털'로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레바논과 사우디 시민권을 모두 가진 하리리 총리 역시 사우디의 반부패 숙청 대상이 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반군 후티의 탄도미사일이 사우디의 수도 가까이 날아든 것도 사우디를 자극했다.
후티는 그간 사우디를 겨냥해 수차례 미사일을 쐈지만, 이번에 가장 깊숙이 들어왔으며 격추 과정에서 생긴 파편이 수도 국제공항 안에까지 떨어졌다.
사우디는 이 파편을 조사한 결과 이란에서 공급한 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란은 이를 즉시 부인했다.
레바논 총리의 사임, 미사일 격추 등 두 외부 사건은 모하마드 왕세자가 안팎에서 권력을 다지는 과정의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내부 숙청과도 연결된다.
모하마드 왕세자는 예멘 내전 개입과 친이란 태도를 트집 잡아 카타르와 단교를 주도한 강경파다.
특히 사우디는 2015년 모하마드 왕세자가 국방장관에 오르고 두 달 만에 예멘 내전에 개입했는데, 예멘이 최악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부닥치자 사우디는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예멘 내전 장기화는 공교롭게 유가 하락과 겹쳐 사우디 재정에도 큰 타격을 줘 그의 입지에 악영향을 끼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모하마드 왕세자가 이란을 '외부의 적'으로 명확히 하는 한편 내부 반대 세력을 제거해 입지를 다잡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모하마드 왕세자의 몰아치기 변혁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아랍권 국가의 한 장관은 "모하마드 왕세자는 레바논 위기가 불거진 만큼 사우디 내부 숙청을 나중으로 미뤘어야 한다"며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는 "하룻밤에 모든 일을 처리해 끝나는 게 낫다"며 "계속해서 물방울만 떨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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