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교황의 첫 미얀마 방문을 앞두고 현지 가톨릭 교회가 '인종청소' 피해자인 이슬람계 소수민족을 지칭하는 '로힝야'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얀마 내 가톨릭 교회 최고 성직자이자 양곤 대주교인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은 오는 27일 미얀마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서 '로힝야'라는 표현을 피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 추기경은 "이슬람계 소수민족은 (미얀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 교황께서도 이슬람계 소수민족을 도우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미얀마 종교 지도자들은 (로힝야족의) 명칭을 두고 분열적인 논쟁을 피하라고 조언했다"며 "로힝야라는 표현은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부르는 말이지만 미얀마군과 정부는 물론 국민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로힝야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보 추기경은 이어 "교황께서 이런 충고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교황이 로힝야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이는 정치 쟁점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로힝야'라고 부르는 특정 인종그룹을 식별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로힝야족 문제를 언급해왔다.
지난 8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요 삼종기도에서 "종교적 소수인 로힝야 형제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슬픈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또 교황은 지난달에는 "20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 아이들이 난민 수용소에 있다"며 "그들에게는 먹을 권리가 있음에도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렸고,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불교국가인 미얀마를 방문하는 그가 어떤 형식으로든 로힝야족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종교계 안팎의 관측이다.
그러나 이 경우 영국 식민지 시절 현재 미얀마 영토에 집중적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인 '벵갈리'(Bengali) 또는 '칼라'(Kalar)로 부르는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도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982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제정한 '국적법'은 미얀마 내 8대 민족과 135개 소수민족에 국적을 부여했지만, 로힝야족은 국적 부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미얀마 국민도 로힝야족을 불법 이민자로 취급해왔다.
아웅산 수치가 주도하는 미얀마 문민정부도 지난해 5월 현지주재 미국 대사관이 '로힝야'라는 표현이 들어간 성명을 낸 데 대해 극우성향 불교단체가 반발하자, 현지주재 외교관들에게 로힝야 명칭 사용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미얀마 측이 로힝야라는 표현을 금기시하지만, 유엔과 미국 등 서방은 여전히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오는 27일부터 나흘간 미얀마를 방문하는 교황은 문민정부의 실권자인 수치, 틴 초 대통령 등과 공식 면담하며, 불교 및 군부 지도자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접촉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어 그는 6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 난민이 대피한 방글라데시도 방문하지만, 로힝야족 유혈 사태 현장인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나 난민 수용소가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방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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