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능력 쇠퇴, 사고원인 꼽혀…"상한 연령 정해야" 주장도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세계가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변화해가면서 고령 운전자 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 원인이 인지능력 쇠퇴로 인한 운전대 조작 실수나 브레이크와 가속기의 혼동 등으로 꼽히면서 운전 허용 상한 연령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각국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고령 운전자 사이에서는 운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며 "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호주 멜버른의 한 병원 구내에서는 96세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주차장 밖으로 로켓처럼 튀어나오는 사고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겨 눈길을 끌었다.
주차 빌딩에서 빠른 속도로 튀어나온 사고 차량은 노상 주차 차량을 들이받은 뒤 살짝 공중으로 떠 도로를 가로질렀고, 건너편 건물에 부딪힌 뒤 멈춰 섰다.
생생한 사고 모습이 소셜미디어로 퍼지자 고령 운전자에 대한 규제 요구 목소리로 이어졌다.
한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교통당국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 운전 최저 연령이 정해져 있는데, 마찬가지로 최고 연령도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96세라면 운전대를 잡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고 호응했다.
고령층 운전자 사고의 급증으로 호주 최대 주인 뉴사우스웨일스(NSW)의 경우 85세 이상 운전자에게는 2년마다 운전시험을 보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나이 든 연령층에 운전시험을 요구하고 곳은 세계에서 NSW주와 미국 일리노이주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인 단체들은 75세 이상이 운전하려면 이미 매년 의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고 벌점제도도 있는 데 운전시험마저 요구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운전 여부는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영국에서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아 40대 여성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90세 남성 운전자에게 지난주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도 집행을 유예, 유족들이 크게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3월 87살의 아내를 병원에 데려주려던 필립 불은 병원 주차장에서 후진하려다 사고를 냈고, 차량은 벽에 막힌 뒤에야 멈췄다.
법원은 고령의 불을 가두는 것이 꼭 공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불에게는 평생 운전을 금지했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서는 불의 아들을 향해 "당신 아버지가 오래 살아 매일 피해자들을 생각하기를 바란다"라고 소리치며 불만을 표시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전체 교통사망 사고 중 75세 이상 운전자로 인한 것이 13.5%(459건)를 차지, 10년 전(2006년) 7.4%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5월 70대 운전자의 차량이 병원 현관을 덮쳐 13명이 다쳤으며, 지난해 11월에는 83세 여성의 차량이 병원 건물로 돌진해 2명이 사망했다. 또 지난해 10월 87세 남성의 경트럭이 등굣길 초등학생들을 들이받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올해 들어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는 치매 검사를 의무화했다.
또 운전 가능 지역과 시간을 제한하는 것과 함께, 사고를 내거나 교통법규를 위반한 80세 이상 운전자에게 차량 운전시험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으며, 고령자 스스로 면허를 반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밖에 미국도 85세 이상 '초고령 운전자'가 급증해 이들의 사고율도 크게 높아졌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지난해 마일 당 자동차 사고를 조사한 결과 85세 이상 운전자층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에서도 최근 76세 운전자가 몰던 화물트럭의 폭발에 이은 화재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 고령 운전자 문제가 크게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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