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숙청 드라이브 내부 저항 '진압'…전선확대 가능성 작아
'오일달러'·종교적 영향력으로 이란 확장 방어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이래 최연소 국왕 등극이 매우 유력한 모하마드 빈살만(32) 왕세자를 진앙으로 하는 '지진파'가 중동 정세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그는 2015년 1월 친부인 살만 국왕이 즉위한 직후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에 오르자마자 2달 만에 예멘 내전에 직접 개입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예멘 내전 개입은 중동의 강국이지만 물밑에서 움직였던 '조용한 왕국' 사우디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사우디의 중동 정책을 주도하는 모하마드 왕세자는 이란을 선명하게 '적'으로 돌리는 방향을 택했다.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의 적은 반군(후티)가 아니라 그 배후로 지목한 이란이었으며 급기야 지난해 1월 이란과 단교하는 강수를 뒀다. 올해 6월엔 이란과 우호를 이유로 걸프 형제국 카타르와도 외교 관계를 끊는 과감한 승부수를 띄웠다.
이 때문에 모하마드 왕세자에 대해 모험적이고 갈등을 유발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른다.
사우디의 차기 국왕에 오를 그가 이란을 적대하는 이유는 사우디를 둘러싼 안팎의 환경을 근거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 최근 수십 년을 돌아보면 사우디의 경쟁국 이란의 지역 내 영향력은 가히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시아파 맹주 이란은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시아파 정부인 이라크, 시리아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영향이 큰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확장해왔다.
이는 걸프 해역을 건너 시아파 인구가 많은 바레인과 시아파 반군 후티가 장악한 예멘 북부까지 확산한 상황이다.
지난 3년간 중동을 휩쓴 이슬람국가(IS) 사태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호재였다.
사우디가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에 가담해 공습만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안 이란은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정부의 지상군을 직접 지원해 IS 격퇴전에서 크게 역할 했다.
자연스럽게 이란의 군사적 영향력이 시아파 벨트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사우디로서는 턱밑까지 들이닥친 이란의 팽창을 막아야 할 필요가 커졌다. 예멘 내전에 지상군까지 동원해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은 사우디의 급박함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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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적대 정책으로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대내적 이유는 국내의 불만과 반발을 대외로 돌리기 위해서다.
모하마드 왕세자는 올해 6월 사촌형(모하마드 빈나예프)을 '비정상적'으로 제치고 왕세자에 책봉됐다.
이후 사우디에서 '금기'였던 여성 운전 허용, 두바이식의 개방 신도시 건설, 엔터테인먼트·관광 진흥 등 자신이 이끄는 '비전 2030' 계획을 거침없이 추진했다. 이달 4일엔 왕자 11명과 전·현직 고위 인사 200여명을 부패를 이유로 전격 숙청했다.
정부에 통제되는 사우디 언론은 그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 보수 종교 세력과 왕실 내 경쟁 세력의 내부 에너지가 축적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우디 왕정 통치는 매우 강력한 전제 군주체제이지만, 과거 국왕(1975년 파이잘 국왕)이 암살된 적이 있을 만큼 방대한 왕실 내부의 암투와 견제로 안정적이지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하마드 왕세자가 이란을 노골적으로 적대할 수 있는 데엔 올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이란과 단교하자 중동 정세가 요동친다면서 '전운'이 감돈다는 시각이 난무했지만 당시엔 이란과 핵협상을 성사한 버락 오바마 정권이 사우디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올해 1월 미국의 정권 교체 뒤 미국과 사우디의 이해관계가 비로소 맞아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하고 전임 정부가 꺼렸던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1천100억 달러 규모)를 이란의 군사 위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승인했다.
게다가 사우디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바마 정부가 이뤄낸 이란 핵합의까지 트럼프 정부에 의해 파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란을 적대해야 하는 사우디로서는 '그린카드'를 받아든 셈이다.
사우디의 이란 흔들기는 당장 카타르와 레바논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간 테러 지원, 탄도미사일 개발을 이란을 압박하는 재료로 삼았다면 최근엔 시아파 벨트 확장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는 팽창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해당 국가의 반이란 세력을 강화해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예멘 내전 장기화, 시리아 정부 강화, 이라크 정부의 IS 격퇴 성공 등이 이어지면서 이란에 밀렸던 역내 주도권을 되찾으려 '판 흔들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4일 레바논 총리의 전격 사퇴가 사우디의 '작품'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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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동의 두 패권국가의 긴장 고조가 유혈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미 예멘과 시리아가 장기 내전으로 피로감이 높아진 터라 '추가 후보지'인 레바논, 바레인까지 전선을 넓히기엔 양국에 모두 부담이다.
대리전 성격인 두 내전과 같은 충돌 방식이 아니라면 양국의 본토에서 전면전을 벌어야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우디는 지난해 초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에 휘둘린다면서 군비 지원금을 끊겠다고 위협한 적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이란 고립정책을 등에 업고 이와 같이 '오일 달러'와 혈통과 종교적 영향력으로 수니파 아랍·이슬람권을 규합해 이란의 확장에 대응하게 될 공산이 크고 이런 대결 국면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이란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야만 최연소 차기 국왕의 입지도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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