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지 줄면서 먹이 찾아 도심행…사라진 숲 대신 도심 전깃줄이 '쉴 곳'
전문가들 "서식지 마련해 인간과의 공존 모색해야"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최근 멧돼지를 비롯해 까마귀와 오소리 등 야생동물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인 도심으로 진출하고 있다.
야생동물들은 개체 수는 늘어나는 데 비해 각종 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줄면서 먹이가 없어지자 도심을 찾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고 있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등 위협적인 존재가 되면서 사살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야생동물들을 피해만 주는 '골칫덩어리'로만 인식하지 말고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를 줄이면서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14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와 수원시 등 도내 시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 31일까지 도내 멧돼지 출몰신고는 438건이다.
하루 평균 1.8번꼴로 출몰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720번 출몰했다.
멧돼지는 더는 농촌 지역에서만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다. 좁아진 서식지를 피해 도심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9월 9일 오후 9시 15분께 몸무게 120㎏ 달하는 거대한 수컷 멧돼지 등 2마리가 경기 광주시 오포읍에 나타났다.
이곳은 야산에 인접한 주택가와 상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멧돼지들은 휴대전화 판매점에 들어가 내부를 휘저은 뒤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결국 주택가 마당까지 들어갔다가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유해조수구조단 엽사의 총에 맞아 120㎏짜리 수컷 한 마리는 사살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산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거대한 멧돼지가 도심을 휘젓는 모습에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의 주택가에도 지난 7월 20일 새벽에 멧돼지가 나타나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이 멧돼지는 이날 오전 5시 14분부터 40여분간 화도읍 일대 도로와 주택가를 활보하다가 엽사에 의해 사살됐다.
남양주시에서는 야생 오소리가 주민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지난 4월 6일 오후 10시께 화도읍 월산리 도로에서 길 가던 남성이 오소리에 다리를 물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비슷한 시각 인근 도로를 지나던 60대 여성도 오소리에 손을 물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또 4월 15일 0시 30분께 화도읍 마석우리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30대 여성 주민이 오소리의 공격을 받아 다리와 손을 물렸다.
서울에서도 지난 4월 2일 오전 3시 12분께 몸무게 80㎏짜리 멧돼지 한 마리가 광화문 광장을 배회하다가 세종대왕상 인근 횡단보도에서 택시에 치여 즉사했다.
수원에서는 떼까마귀가 골칫거리가 됐다.
이달 초부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도심 주변에 까마귀 수백 마리가 날라와 전선에 앉거나 상가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이들 까마귀는 아직 자동차나 사람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고 있지 않지만, 수원시와 시민들은 지난해의 경험에 비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보통 수백마리가 서식지 탐색을 위해 먼저 출몰했다가 이내 수천마리의 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수원지역에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 2월까지 인계동과 권선동 일대에 2천∼3천 마리의 떼까마귀가 날아와 머무르면서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난데없는 떼까마귀의 방문에 시민들은 처음에는 신기해했지만, 주택가와 상가 주변에 주차한 차가 까마귀 배설물로 하얗게 뒤덮인 것을 보고 나서는 떼까마귀가 공포의 대상이 됐다.
또 올 2월 28일에는 이들 까마귀로 인해 인계동 뉴코아아울렛 동수원점을 포함해 인계동 상가거리 일대가 15분간 정전되는 일도 벌어졌다.
떼까마귀의 피해를 경험한 수원시는 지난여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올겨울 떼까마귀 출몰이 예상되는 지역을 선정하고, 가급적 이들 지역에 주차하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홍보했다.
조류전문가들은 수원 도심에 출몰하는 떼까마귀가 먹이활동보다는 잠을 자거나 쉬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수원이나 인근 화성의 평야 지대에서 먹이를 먹은 뒤 떼 지어 앉아 쉴 수 있는 전깃줄이 많은 도심을 찾는 것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시야가 트여 천적의 움직임을 잘 살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수원 인계동이 선택됐다는 것이다.
야생조류 전문가들은 떼까마귀의 도심 출현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인간에게 줄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원시 떼까마귀 빅데이터 분석에 참여한 한국생태연구소 김정수 박사(전 경희대 교수)는 "까마귀들이 도심에 계속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동물들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을 지자체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심 공원에 큰 대나무 등을 심어 떼까마귀의 잠자리로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연구관은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도심에 출몰하는 것은 야생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하려고 사람 앞에 나타나 '절규하고 호소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 공간을 보호해주는 인간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hedgeho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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