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에도 빛 못보는 해외건설…300억달러도 비상

입력 2017-11-15 07:49   수정 2017-11-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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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상승에도 빛 못보는 해외건설…300억달러도 비상

연초 이란 '반짝' 수주 불구, 국내 파이낸싱 막혀 추가 수주 난항

공사중인 현장도 자금조달 못해 삐걱…업계 "정부 지원 절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현대엔지니어링이 올해 3월 이란에서 수주한 사우스파 12단계.

공사금액 3조8천억원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는 국내 건설사가 이란에서 수행한 공사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로 주목받았으나 계약 체결 8개월이 지나도록 파이낸싱(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문제 삼으며 다시 긴장관계가 조성되자 수출입은행을 통한 공사비 조달도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대림산업이 2년여 전부터 공들이고 있는 2조2천800억원 규모의 이란 박티아리 댐·수력발전 플랜트 공사는 올해도 사실상 수주가 어렵게 됐다.

사업 수주를 위해선 국내 자금조달 계획이 선행돼야 하는데 역시 '트럼프발' 악재 등이 겹쳐 진척이 안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건설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건설 수주 실적은 기대 이하 수준이고, 과거에 따놓은 공사들도 파이낸싱이 막히며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늘고 있다.

내년 이후 국내 주택사업을 비롯한 건설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도 쉽게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서 건설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 해외건설 수주액 226억 달러…300억 달러도 경고등

15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들어 11월 현재까지 해외건설 수주액은 총 226억2천25만4천 달러로 작년 동기(233억1천163만6천 달러)보다 3% 감소했다.

지난해 281억9천231만1천 달러로 2006년(164억6천816만4천 달러)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해외건설 수주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대림산업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에서 올해 3월 각각 19억 달러(이스파한)와 32억8천700만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플랜트 수주에 성공하며 수주 전망을 밝힌 것이다.그러나 현재까지 실적은 기대 이하다.

11월 현재까지 중동지역 수주금액은 105억1천394만1천 달러로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예년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친다.

노다지가 돼 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의 다시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적신호가 켜진 영향이 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란은 수년간 경제제재로 재정이 바닥난 상태여서 건설사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해서 공사를 해야 하는데 미국과의 긴장관계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국가적 리스크도 있어 아직 수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내 우리 건설사의 추가 계약이 유력한 사업장은 대우건설의 인도 뭄바이 해상교량 2공구 공사(약 8억6천341만7천 달러)와 지난 8월 대우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각각 수주통지서를 받은 오만 두쿰 정유설비 공사 패키지 1, 2 현장(양사 19억6천250만 달러) 정도다.

두 프로젝트의 공사금액 28억2천600여 달러를 합해도 올해 수주 총액은 300억 달러에 못미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말에 수주가 몰리는 경향도 있어서 이보다는 좀 더 늘어나겠지만 300억 달러 달성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자칫 작년 실적에 못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계약을 끝낸 현장들도 파이낸싱 등의 문제로 공사에 차질이 우려된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지난 2013년 수주했던 우즈베키스탄 천연가스 액화정제(GTL) 플랜트 사업은 공사비가 3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주목받았으나 아직 수출입은행으로부터 파이낸싱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외부 환경도 좋지 않다. 저유가에 호되게 당한 중동 산유국들이 과거처럼 공격적으로 발주 물량을 늘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입찰에 참여한 우리 업체들이 유럽·중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과거 우리 건설사들이 그랬듯이 최근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예정 공사비의 20∼30% 이하로 공격적인 수주를 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 기업들은 지난 3∼4년 간 해외 저가수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경험한 이후 보수적으로 가격으로 써내다 보니 해외업체의 저가 공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아…업계 "정부 파격 지원 절실"

문제는 앞으로의 수주도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50∼60달러로 비교적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동의 산유국들은 신규 플랜트 발주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국가 재정이 부족한 이란,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건설사의 자금조달 능력이 공사 수주의 필수 요건이다.

대규모 신도시 등 개발 계획을 발표한 사우디아라비아도 앞으로 재정사업은 대폭 축소하는 대신 투자개발형 민간협력사업(PPP)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가 재정이 풍부한 중동 산유국들마저 PPP 형태의 공사를 늘리는 추세여서 중국과 유럽처럼 자금 여력이 없는 우리 건설사들은 수주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건설 수주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지난 9월에는 해외건설촉진법을 개정해 투자개발사업 수주를 돕기 위한 해외건설산업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민관 합작투자 사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해외인프라·도시개발 지원기구도 설립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지원기구는 일러야 내년 하반기는 돼야 발족되는 등 진척 속도가 더디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해외인프라 투자개발 사업 진출을 지원하는 '글로벌인프라벤처펀드'(GIVF) 조성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원 규모가 850억원에 불과해 파이낸싱이 절실한 건설업계 입장에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자금조달을 지원해야 할 수출입은행 파이낸싱이나 무역보험공사의 보증 지원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사 수주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데 수은이나 무보의 지원 한도가 정해져 있는 데다 사업성을 까다롭게 분석해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축소와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내년 이후 국내 건설시장마저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외건설에서도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건설사의 수주 담당 임원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신도시를 개발하고, 이란이 공사 발주를 늘리더라도 건설사의 자금조달을 요구한다면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결국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며 "좀 더 현실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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