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가구 임대 아파트 단지 모두 붕괴…텐트서 노숙
구호품·식량 차지위해 '전쟁터' 방불…노상강도 소문 흉흉
(사르폴레자헙<이란 케르만샤주>=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영하의 새벽 추위를 이기려고 가족과 모닥불을 쬐던 마무드(40) 씨는 배를 문지르면서 허기지다고 말했다.
만약을 위해 테헤란에서 가지고 온 라버시 한 봉지를 건넸다. 라버시는 이란 서민의 주식이지만 현지 한국인들이 '걸레빵'이라고 낮춰 부를 만큼 보잘것없는 싼 빵이다.
라버시 5개들이 한 봉지의 가격은 한화로 300원.
마무드 씨는 쿠르드어로 여러차례 "다슈 콰시 부"(감사합니다)라면서 눈물을 훔쳤다.
라버시를 뜯은 그의 손은 자신의 입으로 가지 않았다. 잠이 덜 깬 다섯살 아들의 입에 거친 빵을 집어넣었다.
"아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12일(현지시간) 밤 규모 7.3의 강진에 마무드 씨가 사는 이란 북서부 케르만샤 주(州)의 사르폴레자헙 마을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성한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의 임대 아파트에 살던 마무드 씨의 집도 12일 밤 무너져 버렸다.
가족과 함께 겨우 탈출한 그는 12일 밤엔 공원에서 박스를 덮고 노숙했고 했다. 13일엔 적신월사가 긴급히 가져다준 텐트를 하나 얻어 그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 돌아갈 집은 이제 없다.
지진만 아니었다면 부유하진 않지만 임대 아파트 한 칸에서 세 가족이 안락하게 아침을 먹었을 터다.
"TV에서 시리아 난민을 보고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우리 식구도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됐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르폴레자헙은 국경도시로 이라크로 향하는 길목이다.
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이맘 호메이니 도로는 평소 같으면 이라크에 수출되는 물품을 실은 트럭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구호물자를 나르는 차로 붐볐다.
마무드 씨가 살던 임대 단지의 5층짜리 아파트 20여동 모두 사흘전 무너졌다. 650 가구가 지진이 진행된 40초 만에 집 잃은 이재민 신세가 됐다.
아파트가 전부 지진으로 무너져 단지 앞 공터에 텐트촌이 생겼다.
200여 동의 텐트가 모인 이곳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곡소리가 들렸다.
마흐무디예 씨는 "내 손으로 단지 안에서만 시신 50구를 잔해 밑에서 끌어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이 마을에 진흙집은 없었지만, 제대로 지은 집이었더라도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진이 워낙 강력했다.
텐트촌이 소란해 지더니 어른, 애 할 것 없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도로로 몰려갔다.
구호 식량과 물, 담요를 가져온 종교 단체의 트럭이 도착한 것이다.
구호품과 먹을 것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절박한 이재민들로 트럭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한테도 달라"는 절규와 어른에 밀린 아이들이 길바닥에 넘어져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재앙 앞에선 그들에게 체면이나 질서, 배려는 생존의 간절함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였다.
지진 현장인 케르만샤 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지진이 난 지 20시간 뒤인 13일 저녁에서야 테헤란에 주재하는 외국 기자에게 취재 허가증을 발급했다. 한국 언론 가운데는 연합뉴스가 유일하게 허가증을 받았다.
테헤란에서 케르만샤 주의 주도 케르만샤까지 차로 8시간, 다시 사르폴레자헙까지는 2시간 더 가야 했다.
무역 요충지여서 길은 비교적 잘 닦여졌지만 외진 곳인 탓에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총으로 위협해 구호품과 차량을 빼앗는 노상 강도 범죄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빼앗은 구호품을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가는 길에 과도를 하나 챙기긴 했지만, 강도 떼를 만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도 범죄가 났다는 신고가 접수된 뒤 이란군은 14일 오전부터 곳곳에 경비병을 배치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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