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과 관련해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3명이 전원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검찰은 14일 남재준·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이어 15일 이병기 전 원장에 대해서도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세 사람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총 40여억원을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로 상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재준·이병호 전 원장은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및 정치관여 금지 위반 등의 혐의도 적용됐다. 이들에 대한 구속 여부는 16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거쳐 결정된다. 역대 정보기관 총수 중 김대중 정부의 신건·임동원 전 원장이 불법 감청을 묵인·지시한 혐의로 2005년 구속기소 되고, 그 이전 정부에서는 권영해(정치공작 등), 장세동·안무혁·이현우(12·12 군사반란 등)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정부에서 정보기관 총수를 지낸 인사가 모두 동시에 사법처리 대상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원세훈 전 원장이 2012년 총선·대선 당시 '댓글 부대'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법정 구속돼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서는 전직 정보기관 총수 4명이 한꺼번에 영어의 몸이 될 수도 있다.
세 명의 전직 국정원장이 받는 핵심 혐의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정보 활동이나 수사에 쓸 수 있게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것이다. 거의 매달 5천만~1억 원씩 3년여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 자금은 '문고리 3인방' 일원인 안봉근 전 비서관 등이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최종 귀속자로 의심받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여겨진 청와대 측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일부 정부 시절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 운영자금 등으로 지원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안보에 쓰여야 할 예산이 청와대 핵심 인사나 최고 권력자의 비자금으로 사용됐다면 용납할 수 없는 불법행위인 것은 틀림없다.
검찰은 세 전직 국정원장 등 관련자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해 청와대로 흘러간 돈의 성격과 최종 사용처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전직 국정원장과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안 전 비서관 등이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자금 요구 배경과 용처 등을 조사해 신속하게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박 전 대통령도 최종 귀속자라는 의혹을 받는 만큼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이번 사건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중대한 사안이고,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상납이 3명의 원장 시절 내내 이어져 온 만큼 예외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전직 원장들이 사리를 채운 혐의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 사익추구와 이에 따른 의사결정 왜곡 등 전형적인 뇌물사건과는 궤를 달리하는 점, 그리고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법조계 내 일부 여론도 참고할만하다. 이와 함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 수장의 '수난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제도적 개선책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정원의 과거 적폐 15개 사건 조사를 마무리한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국정원이 순수 정보기관으로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연내 국정원법의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여기에는 국정원장의 임기제 도입과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 등 거시적 개선 방안 외에 예산집행의 투명성 제고, 위법한 명령에 대한 직원의 거부권 도입 등 미시적 대책도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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