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연기되니 허탈해…" 수능 덮친 지진에 고3 수험생 '흔들'

입력 2017-11-16 09:45  

"막상 연기되니 허탈해…" 수능 덮친 지진에 고3 수험생 '흔들'

고사장 대신 모교로 등교한 수험생들 이른 아침부터 서점 문 두드려

(광주·여수=연합뉴스) 형민우 장아름 박철홍 정회성 기자 = "아 공부할 게 없다. 뭘 해야 하냐."

광주 북구 고려고등학교. 마음을 가라 앉히며 1교시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고3 수험생들이 모교로 등교했다.

전날 포항 지진 여파로 유례없이 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된 탓이다.


4개 줄 각 6개 자리로 배치된 고사장 의자가 아닌 책상에 털썩 주저앉은 한 고3 수험생은 전날 참고서를 모두 버려버렸고, 앞으로 1주일 더 공부할 게 막막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 학교는 앞으로 1주일 동안 수험 준비를 이어가야 할 학생의 혼란을 피하고, 분실 우려가 있는 수험표를 회수하고자 등교를 독려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은 빵과 우유를 한 손에 들고 친구 어깨를 다독이며 교실로 향했고, 부모의 차를 타고 교문에서 내린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학교 언덕을 올랐다.

교실에 앉은 학생은 등교는 했지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듯 텅 빈 칠판만 멍하니 바라보거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안을 서성거렸다.

고3 수험생 임찬형(18)군은 "수능 연기 소식에 당황했다"며 "수능을 대비해 몸 상태를 조절하고 공부 일정도 맞춰왔는데, 앞으로 1주일 동안 뭘 더 공부해야 할 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학생들의 수험표를 걷으며 다독이는 한 담임은 "1주일 더 공부할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하자며 학생들을 다독였다.


학생 중 일부는 등교 후 책가방을 교실에 내려놓자마자 다시 터덜터덜 언덕길을 내려와 학교 앞 서점 문을 두드렸다.

전날 수능을 앞두고 참고서와 문제집 등을 모두 버려버렸고, 1주일 더 공부해야 할 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이 서점에는 전날 수능 연기 소식이 전해지자 100여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찾아 발 디딜 틈 없었다.

보통 수능 이틀 전부터는 참고서나 모의고사 문제집 수요가 없어 반품하거나 교재를 진열대에서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수능 연기로 찾아든 수험생들대문에 창고에서 재고 문제집을 모두 꺼냈다.

서점 업주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문제집을 계속 찾을 것 같다"며 추가로 출판사에 납품을 요청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평균 7천원 가량하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한 아름 들고, 다시 고된 언덕길을 올랐다.

수험생 김솔(18)군은 "친구들과 함께 어제 문제집과 참고서를 모두 버려버려서 공부할 교재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며 "1주일 동안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보려고 아침 일찍 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여수 지역 고사장도 이른 아침부터 고사장 현수막을 철거하고, 공부하기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여수시 선원동 여천고교 고3 수험생 최모(18)군은 "막상 시험이 연기되니 허탈했다"며 "포항 친구들도 운이 없지만,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능 연기로 일부 학교에서는 등교 시간을 헛갈리는 혼란도 있었다.

광주 어룡초 2학년 여학생은 "선생님이 어제 1시간 늦게 등교하라고 했지만, 엄마가 수능 연기 됐으니 원래대로 일찍 가라고 해서 등교했는데 친구들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수능 연기로 광주시교육청은 애초 계획대로 초등학교는 10시 등교하고 중·고등학교는 휴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체육 중·고와 마이스터고 2곳 등 모두 4개 학교만 정상 등교한다.

전남도교육청도 시험장이 있는 시·군 초등학교는 10시 등교를 유지하도록 하고 애초 휴업을 결정한 중·고등학교는 예정대로 휴업하도록 했다.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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