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좀비기업들이 경제 회복세 좀먹는다

입력 2017-11-16 17:22  

유럽도 좀비기업들이 경제 회복세 좀먹는다

유로존 6개국 좀비기업 비율 10년새 두 배로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좀비 기업들이 유럽 경제의 회복세를 좀먹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15일 보도했다.

양모 코트와 카디건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의류 제조·판매회사 스테파넬이 좀비 기업의 실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 10년간 9차례나 적자를 냈고 6차례나 거래은행들로부터 채무조정을 받았다. 스페인의 자라와 벌인 경쟁에서 속절없이 밀린 데다 2008년에 닥친 경제 침체 때문이었다.

스테파넬은 아직 살아있지만 간신히 버텨 나가고 있을 뿐이다. 남유럽에는 만성 적자와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지만 스테파넬처럼 은행과 주주의 자금 수혈에 의존하는 기업이 수백개를 헤아린다. 경제전문가들과 중앙은행들은 좀비 기업들이 우량 기업들이 정한 가격을 떨어뜨리고 인위적인 진입 장벽을 구축하며 부실기업의 퇴출, 악성 부채의 정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큰 문제로 꼽는다.

유럽 경제가 회복 모드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좀비 기업, 이들과 관련된 부채 문제는 남유럽만이 아닌, 유럽 전체의 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설립된 지 최소 10년이 경과했고 증시에 상장됐으며 이자비용이 기업의 세전 이익을 초과하는 기업들을 좀비기업으로 정의한다.

BIS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을 포함한 유로존 6개국의 기업 가운데 약 10%가 좀비기업에 속한다. 이는 2007년의 5.5%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양국은 2007년 이후 좀비기업의 비율이 3배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좀비기업들은 전체 노동자의 약 10%를 고용하고 있다. 또한 2013년에 기업 부문에 투자된 자금의 근 20%가 이들 좀비기업에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좀비기업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수년간 펼친 공격적인 양적완화가 뜻하지 않게 초래한 부산물이기도 하다. 유로존의 일부 부국에서는 ECB의 양적완화 덕분에 은행들이 부실기업을 살려두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양국에서는 근 100억 유로의 은행 자본이 적절한 용도에 투자하지 못한 채 부실기업들에 묶여 있었다.

지난 6월 브누아 퀘레 ECB 집행이사는 양국의 부적절한 자본 배분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의 그 어떤 시점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지난 9월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ECB의 채권 매수가 남유럽 은행들을 안정시켜 대출의 확대를 유도했지만 부실 대출도 늘렸고 고용이나 투자에는 아무런 긍정적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학술 보고서를 제시하며 ECB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전문가들은 지난 수년간 유럽의 생산성이 저하된 것도 좀비기업들을 만들어낸 또다른 배경으로 꼽고 있다.

이탈리아의 시멘트 생산량은 2007년 4천700만t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60%나 감소했지만 2007년 당시 29개였던 시멘트 회사 가운데 살아남아 있는 회사는 작년 말 현재 24개나 됐다. 현지의 대형 시멘트 회사 최고경영자는 상당수가 '금융 도핑'에 의존해 목숨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표현했다.

저리 자금을 이용해 보유 선박을 늘린 유럽 해운업계도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의 해운사 노르트도이체 페르뫼겐 홀딩이 단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총 11억 달러의 적자를 냈고 부채는 3배가 늘어나면서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부채 규모는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거둔 매출액의 9배에 가까운 것이다.

이 회사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선박 대출이 가장 많았던 HSH노르트방크로부터 지난해 5억 유로 가량의 부채 탕감을 받았다.

은행이 입은 손실은 독일 함부르크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주의 주민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공산이 크다. 이 지역 주민들이 HSH노르트방크의 주식 90%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선박 대출이 많은 독일의 5개 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 대출은 2016년말 현재 260억 달러에 이른다. 이들의 선박 대출 총액 가운데 37%에 해당하는 것이다.

무디스는 이들 은행이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은행 측에서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독일 선주협회 관계자는 그러나 독일 해운업계에서는 파산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부실 대출의 비율이 15%선으로, 유로존의 평균인 6%를 크게 웃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 은행권의 부실 대출 비율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5%까지 치솟앗지만 지금은 2% 밑으로 내려간 상태다.

모건스탠리는 이탈리아 은행들이 부실 대출 비율을 유로존의 평균 수준까지 낮추는 데는 1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유럽이 파산법과 파산법원 관련법을 손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좀비 기업들을 퇴출하고 은행들의 부실 대출을 신속히 정리하며 투자자금을 더 나은 곳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유럽도 미국의 챕터 11조와 같은 방식의 파산 절차를 도입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파산 절차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뒤지는 상태다.

jsm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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