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기운 대성아파트 주민 "살다 이런 일도 다 겪어…어이 없다"
대피소 세면장 한곳뿐, 씻을 곳 없어…고령자 등 신체 이상 호소
(포항=연합뉴스) 김용민 최수호 기자 = 16일 지진 대피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흥해읍 실내체육관.
전날 발생한 규모 5.4 강진에 따른 건물 붕괴 위험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주민 800여명이 이틀째 삼삼오오 모여 걱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았다.
바깥은 겨울을 방불케 할 만큼 추운 날씨를 보였으나 실내는 다소 견딜 만했다.
새마을회 등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은 식사 시간에 맞춰 따뜻한 국과 밥, 반찬을 식판에 담아 주민들에게 건네주고 있다.
일부 주민은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탓인지 모포를 덮어쓴 채 늦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모두 하룻밤 사이에 적잖이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특히 주민대피령을 내린 흥해읍 마산리 대성아파트 주민들은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6개 동에 260가구가 입주해 있는 이 아파트에는 30년 전인 1987년에 지어졌다.
이번 지진으로 일부 벽체와 기둥이 무너지고 창틀이 심하게 뒤틀리는 등 큰 피해가 났다.
5층짜리 1개 동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기도 했다.
아파트 한 주민은 "어젯밤에 주민들이 대부분 실내체육관으로 대피를 했고 일부는 시내 다른 가족한테로 가는 것 같았다"며 "살다가 이런 일도 겪는가 싶은 게 참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일부 고령의 주민은 대피소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피소 한쪽에 있는 약품 지급소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증상을 호소하며 약을 타가는 주민이 적지 않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모포와 내의는 물론 세면도구와 속옷도 지급해 주고 있으나 막상 몸을 씻을 공간이 부족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세면장이 한 곳밖에 없어서 바로 옆 흥해읍사무소 세면장까지 북새통을 이룬다.
이러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집에 언제 가나"라는 긴 한숨 섞인 넋두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피 주민 김모(62)씨는 "대피소를 찾은 주민 대부분이 평생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지 막막한 심정인 것 같다"며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언제까지 집 밖에서 지내야 하는지 걱정이 태산 같다"며 한숨지었다.
포항시 관계자는 "현재 6개 대피소에 주민 1천500명 정도가 머물고 있는데 갈수록 주민 수가 늘 것으로 보인다"며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귀가하시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 su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