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0년] 경제 기초체력 '짱'…성장활력은 '뚝'

입력 2017-11-19 05:50   수정 2017-11-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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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경제 기초체력 '짱'…성장활력은 '뚝'

외환보유액 1997년의 18.4배…코스피 지수 6.7배 올라

성장률 2%대 고착화 우려…청년실업 등 고용해법도 절실

위기 재발 가능성엔 평가 엇갈려…저출산·고령화 대응 중요




(세종=연합뉴스) 이세원 이대희 기자 =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발생 20년을 맞아 대국민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국민 57.4%는 지난 50년간 한국경제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IMF 외환위기'를 지목했고, 59.7%는 본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1997년에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의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 삶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며 이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에서 "외환위기가 한국경제 역사에 치욕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런 낙인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어느 정도 지웠다. 그 결과가 위장된 축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환위기 20년, 한국경제는 분명히 달라졌다.

대외건전성 측면에서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제는 다시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그때와 같은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국민 삶의 질이 그만큼 개선됐느냐 하는 점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성장률은 물론 일자리 지표 등은 오히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후퇴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경제는 달라졌을까.


◇ 강해진 기초체력…대외건전성도 개선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때와 20년이 지난 현재 거시지표를 비교해 보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몰라볼 정도로 탄탄해졌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102억8천500만달러 적자였다. 올해는 1∼9월 누적 흑자가 933억8천만달러에 달한다.

20년 전 구제금융은 보유외환 부족이 결정타가 됐다. 당시 연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204억달러에 불과했다. '환란'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외환보유액 대비 만기 1년 미만 단기외채의 비중은 286.1%에 달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외화 빚이 지갑 안에 들어 있는 돈보다 3배 가까이 많았던 셈이다.

이에 비해 올해 10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천844억6천만달러로 20년 전의 18.4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세계에서 9번째로 달러를 많이 갖고 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30.8%(6월 기준)로 뚝 떨어졌다. 단기 외화 빚을 다 갚아도 잔고가 현재의 70% 가까이 남는다는 의미다.

주식 시장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1997년 12월 코스피지수 종가는 376.31이었지만 지난 16일 기준 종가는 2천534.79로 6.7배 올랐다.

자연스레 외부에서 보는 평가도 수직상승했다.

1997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무디스는 한국을 각각 B+, B-, Ba1 등 '투기 등급'으로 평가했다.

20년 뒤인 현재는 각각 AA(11계단 상승), AA-(12계단 상승), Aa2(8계단 상승)로 크게 개선됐다. 세 곳의 평가 모두 일본보다도 등급이 두 단계 높다.



◇ 고착화된 저성장에 양극화…경제활력은 감소


대외건전성과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달라졌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우리 경제는 7.6%, 1997년에 5.9% 성장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1998년 -5.5%로 성장률이 곤두박질쳤다.

이후 한국경제는 다시는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도 2013년 2.9%, 2014년 3.3%, 2015년 2.8%, 2016년 2.8%를 기록하는 등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올해 3년 만에 3% 성장률 복귀가 확실시되지만 내년 이후에도 이같은 추세가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에도 우리 경제의 생산성은 여전히 저조하다.

IMF는 최근 한국 정부와 연례협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동생산성이 여전히 미국의 50% 정도 수준"이라며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광공업(2010년=100) 노동생산성지수는 2008년 88.5에서 2016년 96.5로 9.0% 개선되는데 그쳤다.

무엇보다도 미래를 짊어질 젊은층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지난 10월 청년실업률은 8.6%로 동월 기준으로는 1999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청년 체감실업률인 고용보조지표 3은 21.7%로, 청년 5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화 심화 역시 외환위기 이후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자리잡았다.

KDI 인식조사에서 IMF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무엇이냐고 묻자 응답자의 31.8%가 소득·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다.



◇ 위기 재발 가능성 평가 엇갈려…저출산·고령화 대응해야



외환위기가 가져온 긍정적·부정적 변화보다 앞으로도 이같은 위기가 재현될 수 있는지, 있다면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위기 재발 가능성에 대한 관측은 다소 엇갈린다.

김정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통화가 없는 나라가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성장률을 높이려다 보면 언제든지 자본유출로 인한 외환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위기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기업·금융 부문의 안정성이 좋아졌기 때문에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외 개방성이 크기 때문에 외부 충격이 오면 흔들릴 수 있지만 외화 보유액이나 단기외채 비율, 기업 이자보상배율 등 채무 상환 능력 지표를 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위기 재발 여부 보다는 한국경제가 고질화된 저성장의 구조적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실장은 "한국의 인구 구조를 보면 일본과 약 20년 차이를 두고 고령화 등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감소하고 경제 전반이 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저성장이 중국의 추격이나 산업 구조의 변화 등 구조적인 요인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단기적인 확대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며 "교육 개혁, 연금제도 손질, 기술력 향상 등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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