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6개월간 탈북자들 릴레이 인터뷰…'불법이 생계'인 北 주민 일상 소개
"주민들 환멸 때문에 北 떠나…北에서 최악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北, 공산주의 붕괴하고 경제 멈춘 나라…장마당이 꿈 불어넣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나는 장마당(시장)에서 구한 USB를 통해 많은 (밀반입된)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 집에 있는 TV에 꽂아서 시청했다. 배터리나 쌀 등 일반 물품들을 파는 상인들은 USB를 카운터 아래에 숨겨놓고 있다. 장마당에 가면 상인들에게 '오늘 뭐 맛있는 거 있어요'하고 묻는다. 그게 암호다. USB는 숨기기 쉽고 잡히면 부숴버리면 되니까 편하다."
2013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전화연결원으로 일하다 탈북한 A씨(현 49세)의 증언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6개월간 한국과 태국에서 A씨를 비롯해 25명이 넘는 탈북자들과 만나, 그들의 증언을 담은 '김정은 정권 아래의 삶'이라는 기사를 17일(현지시간) 인터넷판에 실었다.
탈북자들은 고문과 감시 등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김정은 정권에서 보낸 일상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WP는 "탈북자들이 그리는 북한의 모습은 완전히 공산주의가 붕괴한 나라, 경제가 멈춰버린 나라"라며 "북한 주민은 스스로 길을 헤쳐나가며 대부분이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전했다.
또 "주민들은 공장과 들판에 일하러 가지만 그들이 할 일은 거의 없고 급여도 거의 전무하다"며 "반면에 주민 필요에 의해 민간경제가 활발하게 일어나 사람들은 집에서 만든 두부를 팔거나 마약 거래, 국경 또는 뇌물을 통해 입수한 소형 DVD 플레이어 밀매 등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벌 방법들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WP는 "수만 명에 달하는 국외 노동자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벌목장, 의류공장, 건설현장 등에서 외화를 벌고 있으나, 봉급의 3분의 2는 북한 정권에 넘어가고 3분의 1만 가질 수 있다"고 전했다.
'장마당'은 물품의 유통장소일 뿐 아니라 수다와 소문, 불법 매체 등이 오가며 정보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이 신문은 "시장활동이 급성장하고, 중국을 드나드는 무역상들의 잡담이나 USB에 저장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보가 시장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수많은 북한 주민에게 과거에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꿈을 불어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WP는 북한 주민의 탈북 이유가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배가 고파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환멸 때문에 북한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어떤 이들은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북한을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성공과 부에 대한 그들의 꿈이 북한 체제 내에서 좌절됐기 때문에 떠난다"며 "또 다른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하기 위해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WP가 소개한 탈북자들의 주요발언이다.
▲ "나는 지도자 세 명 모두를 겪었지만, 우리 중 누구도 삶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김정은이 벌이는 여명거리 사업(평양의 주거개발 사업) 같은 계획을 위해 돈을 내야 한다. 그 사업 때문에 정부에 가구당 북한 돈 1만5천 원을 성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 돈은 4개월 치 봉급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어부·45세·올해 탈북)
▲ "내 주업은 얼음(마약)을 파는 것이었다. 그때 회령시에 사는 성인의 70~80% 정도는 얼음을 사용했다고 본다. 고객은 경찰관, 보안요원, 노동당원, 교사, 의사 등 일반사람이었다. 많은 경찰관과 보안요원들은 얼음을 하러 내 집에 찾아왔고 물론 나는 그들이 나의 뒤를 봐주었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았다."(마약상 출신·46세·2014년 탈북)
▲ "우리는 김정은의 생일에 선물로 사탕과 과자, 껌, 뻥튀기를 받았어요. 그런 과자들을 받으니 그 사람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는 그럴 때마다 교실에서 일어서서 '감사합니다, 김정은 장군님'하고 외쳤어요."(초등학생·7살·올해 탈북)
▲ "내 어머니는 시장에서 가전제품을 파는 일을 해서 DVD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중국, 인도, 러시아 영화와 수많은 남한의 연속극들을 봤다. 남한에 가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아코디언 연주자·25세·2015년 탈북)
▲ "북한 체제에 신물이 났다. 마치 감옥에서 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마을 지도자, 일반경찰,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북한에서 무엇이 최악이었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건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라고."(대학생·37세·2013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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