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안주는 英 원칙 훼손 논란…이란은 "관련없다" 적극 부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정부 전복 혐의로 이란 교도소에 1년 반동안 수감 중인 이란계 영국인 여성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38)를 석방하기 위해 이란과 영국이 거액의 '몸값 협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이 41년 전 이란에 돌려주지 못한 무기 판매 대금 4억5천만 파운드(약 653억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이란이 이 여성을 본국으로 석방한다는 것이다.
이 대금은 1976년 당시 이란 팔레비 왕정이 영국의 전차 1천500대를 사기로 계약했지만 185대만 이란으로 인도되고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나자 영국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란은 꾸준히 영국에 미인도분에 대한 대금을 환불하라고 요구했고, 2002년 영국 법원에 이 돈이 공탁됐지만 이란으로 송금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최근 언론을 통해 이란으로 비로소 환불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41년만에 다시 관심이 집중됐다.
하미드 바에이디네저드 주영국 이란 대사는 17일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영국이 4억5천만 파운드의 빚을 갚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영국이 41년이 된 거액의 빚을 다소 뜬금없이 이란에 갚는다는 점을 둘러싸고 '영국판 웜비어' 사건으로 불리는 자가리-랫클리프를 석방하는 '대가'아니겠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인질의 몸값을 주지 않는 영국 정부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바에이디네저드 대사는 "영국이 무기 거래 계약을 깬 책임으로 이란에 응당 줘야 할 빚을 갚는 것"이라면서 석방과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영국인과 결혼한 자가리-랫클리프는 영국 자선단체 톰슨로이터재단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 지난해 4월 친정 가족을 만나러 이란을 방문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자가리-랫클리프는 이란과 영국의 이중 국적자이지만 이란은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법적으로 자국민으로 대우한다.
이 여성은 이란 정권을 '조용히 전복'하려는 계획을 짜 안보를 위협한 혐의를 받고 구속기소 됐다.
'조용한 전복'은 무력이 아닌 반(反)이슬람, 반정부적인 선동을 인터넷이나 소규모 모임 등을 통해 유포하는 피의자에게 쓰는 표현이다.
그를 체포한 이란혁명수비대는 그가 이란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인터넷과 미디어 관련 계획을 모의하고 실행했다고 밝혔다.
이란 법원은 올해 1월 징역 5년형을 확정했다.
여기에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이 일을 더욱 키웠다. 그간 영국 정부는 이 여성이 자선단체의 직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석방을 요구했는데, 존슨 장관이 "이란에서 언론인 교육을 간단히 했다"고 '실언'한 것이다.
이란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언론 활동을 하는 것은 간첩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란 정부는 자신에 대해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한다면서 2009년 영국 언론사를 모두 추방했다.
이란 사법당국은 존슨 장관의 발언을 근거로 추가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이 혐의가 유죄로 판결되면 최대 16년 형을 받을 수 있다.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지난해 1월에도 미국과 이란의 '빚-수감자 교환' 의혹이 제기됐었다.
미국은 이슬람혁명 직전인 1979년 이란과 미국이 4억 달러 규모의 무기 계약을 맺었지만 혁명 때문에 미국이 이란에 무기를 인도하지 않고 대금도 돌려주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핵협상 타결에 맞춰 이자를 포함 17억 달러를 환불했다.
공교롭게 이 시점에 이란에 수감 중이던 미국인 5명과 미국에 억류된 이란인 7명을 맞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맞교환의 대가로 미국이 17억 달러를 줬다는 것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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