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나이 들었다고 은퇴·연봉 삭감? 수긍 안 해"

입력 2017-11-19 06:00  

이동국 "나이 들었다고 은퇴·연봉 삭감? 수긍 안 해"

"대표팀 탈락 전혀 서운하지 않아…나는 행운아"

"2006년 월드컵 좌절은 아쉬워, 2009년 K리그 우승 가장 기뻐"

"나의 신체는 천재형, 기량은 노력형"

"내년에도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다…부상은 최대 적"




(완주=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프로 데뷔 만 20년, 프로축구 K리그 사상 첫 200골, 역대 첫 '70(골)-70(도움)' 달성, K리그 5번째 우승, 대표팀 발탁…

전북 현대 이동국(38)은 2017시즌이 어느 한 해보다 다사다난했다.

2009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후 처음 교체 신세가 되면서 워밍업만 하다가 나가지 못하는 경기도 많았다.

마흔 살을 바라보며 처음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해피 엔딩'으로 시즌을 마쳤다. 아무도 밟지 못한 두 가지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무려 2년 10개월 만에 대표팀 호출도 받았다.

남들이 '은퇴'를 얘기하지만, 이동국은 다시 내년 시즌을 기약한다. 한국 나이로 불혹을 맞는 2018년이다.

지난 17일 전북 완주군 봉동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1시간 넘게 그의 축구 인생과 계획을 들어봤다.





◇ "나이 들었다고 은퇴? 수긍 안 해"

이동국은 언젠가부터 '은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이 탓이다.

그는 단순히 나이만으로 '은퇴'를 얘기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나이만 들면 은퇴를 해야 하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은퇴를 생각하면 스스로 나약해지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력이나 체력이 안 되면 몰라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며 웃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만해야 하는 시기라는 판단이 들면 그만둘 자신이 있다"고 했다. 아직은 후배들과 부딪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만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는 "언제 은퇴한다고 하면 축구에 대한 열정이 떨어질 것 같다"며 "은퇴는 진짜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을 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동국은 현재 구단과 내년 시즌에 대해 협상 중이다.

연봉에 대해서도 "경기력이 아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연봉을 낮춰야 하는 것은 선수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라며 "나의 가치, 내가 한 만큼의 보상은 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나와 구단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전북이 최우선이고 지금 구단과 협상이 잘 돼 가고 있다"고 했다.





◇ "돈 더 벌기 위해 은퇴 안 한다? 그냥 웃지요"

이동국은 2015년 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연봉에서 11억1천256만 원을 받아 국내 선수 중 '연봉 킹'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8억6천726만 원으로 3번째였다.

'이제 벌 만큼 벌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최근에는 막내아들 '대박이'(이시안)를 비롯해 다섯 자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동국은 "아이들이 많아서 들어갈 돈이 많다"고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돈만 번다면 다른 것을 하면서 더 벌 자신이 있다"고 손을 내저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며 "선수 생활만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든 닥치면 돌파구를 생긴다"고도 했다.

그는 "은퇴를 하면 1년 정도 쉬면서 가족과 여행도 가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그때 무엇을 할지 생각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지금은 선수 생활에 전념하고 싶다는 것이다.





◇ 대표팀 탈락…"전혀 서운하지 않아, 난 행운아"

이동국은 지난 8월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및 우즈베키스탄전을 앞두고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무려 2년 10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이달 열린 콜롬비아 및 세르비아와 평가전을 앞두고는 탈락했다. 내년 월드컵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이 나이에 제외된 것이 뉴스가 된 것에 기뻤다"고 했다.

아직 '내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다.

대표팀의 두 차례 평가전에 대해서는 "시간이 주어지면 잘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신뢰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절실하게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동국은 러시아 월드컵을 합해 선수 생활 중 총 6번의 월드컵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월드컵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출전은 19살이던 1998년과 2010년 두 차례였다. 출전 시간이 길지 않았다.

월드컵만 생각하면 한이 맺혔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월드컵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운아인 것 같다"며 "행복하다"고 진심을 보였다.






◇ "2006년 월드컵은 그래도 가장 아쉬웠던 순간"

그래도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은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월드컵에서 잠시 출전해 강한 인상을 남긴 이동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다렸지만, 그라운드 밖에 있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한 것이다. 곧바로 입대한 이동국은 이후 2006년 월드컵만을 바라봤다.

그는 "당시 2~3년 동안 월드컵 무대를 상상했다. 2005년 신혼여행 가서도 몸을 만들 정도로 월드컵만 바라봤다. 기량도 몸도 최고였다"고 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을 2개월여 앞둔 2006년 4월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는 "독일에서 수술 판정을 받았을 때…"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오히려 그때 후련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후회 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수술 판정을 받은 날 밤 짐 정리를 하는데, 눈물이 그냥 줄줄 흘러내리더라,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곱씹었다.

2006년의 아쉬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2002년의 영향이 컸다. 한 번의 큰 시련을 겪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나를 떨어뜨렸지만, 냉정하게 봐줘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며 "2002년 이후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성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 "신체는 천재형, 기량은 노력형…스피드만 좀 더"

이동국이 20년 동안 뛰면서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빼놓을 수 없다.

187cm, 83kg의 하드웨어도 그렇지만, 소프트웨어는 더욱 주위를 놀라게 한다.

나이가 들면 체공시간(점프 후 떠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동국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회복 능력은 오히려 20대 선수들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 바로 다음 날이나 다친 이후 회복 속도는 동료들도 혀를 내두른다.

이동국은 "신체적으로는 내가 생각해도 타고났다. 유전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잘 물려받은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봐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노력은 봐주지 않고 은퇴를 얘기할 때 섭섭하다는 것이다.

이동국은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스피드를 들었다.

그는 "느리지는 않지만, 스피드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 적이 있다"며 "그러나 나는 빠른 발이 아닌 주변 선수들을 활용해 플레이하는 공격수여서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다.







◇ 전북, 최강희 감독 그리고 2009년 첫 우승

이동국은 2009년 처음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갔다가 유턴해 성남으로 간 지 6개월 만이었다.

스스로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고 팬들의 관심 속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그때 최강희 감독을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동국은 "다른 팀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감독님만 믿고 전북에 갔다"고 말했다.

"떨어진 경기력을 올리는 것이 목표였고, 다시 한 번 축구를 해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동국은 '다른 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이적 첫해 22골을 터뜨리며 전북을 K리그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며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최 감독에 대해서는 "자칫하면 끝날 수도 있었던 나의 축구 인생의 길을 터주고, 나를 중심에 두게 해주신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적 후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이동국은 10경기에 나와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최 감독은 묵묵히 기다렸다.

이동국은 시즌 개막 후 두 경기 만에 첫 골을 넣으며 보답했다.







◇ "내년에도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다…부상은 최대 적"

이동국은 올 시즌을 "전북에서 골을 가장 적게 넣은 해"라고 했다.

앞선 8시즌 동안 두 자릿수 이상 득점을 했는데, 올해에는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9골에 그친 탓이다.

출전 시간도 적었다. 김신욱, 에두와 번갈아 출전하다 보니 교체로 나올 때도 잦았고, 그라운드를 밟지 못할 때도 있었다.

프로 통산 201골 71어시스트를 기록한 이동국은 "개인적인 욕심은 언제인가부터 많이 놓았다"며 "몇 골을 더 넣겠다는 것보다 기회만 오면 넣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부상은 가장 큰 적이다.

이동국은 "20대랑 달라서 다치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올해에도 근육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쉬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내년에는 K리그는 물론, 2년 만의 아시아 정상,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등 3관왕에 대한 꿈도 부풀렸다.

이동국은 "그동안 3관왕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면서 "이제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인터뷰를 내년에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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