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황제' 두쿠르스가 윤성빈에 친절할 수 없는 이유

입력 2017-11-19 08:42  

'스켈레톤 황제' 두쿠르스가 윤성빈에 친절할 수 없는 이유

30대 중반 두쿠르스, 평창서 '올림픽 金' 사실상 마지막 도전

윤성빈은 턱밑까지 추격하며 월드컵서 앞지르기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나를 존경한다고요? 미쳤네요."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3·라트비아)는 2016∼2017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8차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 3월 한국을 찾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 스켈레톤의 '간판' 윤성빈(23)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얘기에 민망한 듯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사실 두쿠르스는 윤성빈뿐만 아니라 스켈레톤에 몸담은 전 세계 모든 선수가 우러러보는 존재다.

그는 2009∼201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8시즌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8시즌 동안 월드컵은 총 65번 치러졌다. 두쿠르스는 이 중에서 무려 47번이나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런 두쿠르스가 대회에서 오가며 윤성빈을 만나면 다소 쌀쌀맞게 대한다고 한다.

윤성빈은 "난 두쿠르스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선수는 나한테 인사도 안 해준다"고 섭섭함을 토로한다.

두쿠르스가 윤성빈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19일(한국시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윤성빈은 이날 미국 유타 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2017∼2018시즌 IBSF 월드컵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37초32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두쿠르스는 윤성빈보다 0.63초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에 그쳤다.

윤성빈이 월드컵에서 두쿠르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번에 세 번째다.


썰매는 홈 이점이 특히 큰 종목이다.

대회가 열리는 트랙에서 수없이 많은 반복 훈련을 해봐 눈을 감고도 탈 수 있을 경지에 오른 개최국 선수를 당해내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두쿠르스는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모두 개최국 선수한테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진 두쿠르스는 내년 2월 열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에 도전한다.

30대 중반에 출전하는 평창올림픽은 두쿠르스가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두쿠르스가 윤성빈의 성장을 반길 리 없다.


윤성빈은 고교 3학년이던 2012년만 해도 엘리트 스포츠는 접한 적 없는 보통 학생이었다.

그러나 운동 신경 하나는 탁월했다.

키가 178㎝인 윤성빈은 제자리 점프로 농구 골대를 잡을 만큼 순발력이 뛰어났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체육 선생님이 스켈레톤을 해보라고 권했다.

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였던 이 선생님의 권유가 윤성빈의 인생은 물론, 한국 스켈레톤의 역사까지 바꿔놓았다.

윤성빈은 스무 살의 나이에 출전한 소치올림픽에서 16위에 오르며 큰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스켈레톤 선수로 타고난 재능에 불타는 승리욕이 더해져 두쿠르스에 이은 세계 스켈레톤 2인자로 발돋움했다.

이변이 없으면 평창올림픽 스켈레톤 경기는 윤성빈과 두쿠르스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윤성빈이 영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실현할 경우 나이까지 고려하면 두쿠르스 시대는 저물고 윤성빈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ksw0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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