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은 지 만 20년이 됐다. 한국은 1997년 11월 21일 외화부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보유 외환이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한국 경제는 IMF에 손을 벌리면서 뿌리째 흔들렸다. IMF의 긴축 재정, 고금리, 구조조정 등 요구로 당시 30대 그룹(기업집단) 가운데 근 절반이 사라졌다. 대규모 실업사태가 이어졌고 국민 개개인의 삶도 피폐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50년 간 가장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로 응답자의 57.4%가 'IMF 외환위기'를 지목했고, 외환위기가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도 59.7%나 됐다. 20년이 지났지만 국민 다수의 뇌리에는 아직 외환위기의 충격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거시 지표는 상당히 양호하다. 1997년 말 204억 달러였던 외화 보유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3천845억 달러로 18.8배가 됐다. 이는 세계 9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보유외환 대비 1년 미만 단기외채 비중은 286.1%에서 30.8%(6월 현재)로 낮아졌다. 1997년 말 376.31이던 코스피 지수는 2,533.99(17일 현재)로 6.7배가 됐다. 1997년에는 경상수지가 102억9천만 달러 적자였지만 올해는 1~9월에만 933억8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는 2012년 3월 이래 67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투기등급'이던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국가 신용등급이 현재는 8단계 내지 11단계 상승했다. 3개사 등급 모두 일본보다 2단계 높다. 그간 3대 경제주체인 가계·기업·정부가 일심단결해 위기를 극복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외형적 지표만 보면 한국이 다시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다. 대외 변수에 흔들리기 쉬운 한국 경제에는 여전히 취약점이 많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상존하고, 주력 산업인 조선, 철강 등이 아직도 침체 상태다. 미미한 회복세를 보이긴 하나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다. 2010년 이후 2%대에 갇힌 저성장 기조도 문제다. 올해 겨우 3%대 성장이 기대된다고 하지만, 내년 이후에 추세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최근엔 원화·금리·유가가 일제히 강세를 보이는 '신 3고'가 복병으로 부상했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친노동정책이 성과를 내면 좋겠지만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부담이다. 정부가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대외 변수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경제의 펀더멘털을 공고히 하는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을 압박하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노동시장 개혁으로 미국의 50%에 불과한 노동 생산성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겨우 회복세로 돌아선 한국 경제가 언제라도 다시 나락에 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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