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 빨리왔다고 사과' 화제…"굳이 사과할 필요 있나"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최근 일본의 한 민영 철도회사가 예정 시각보다 20초 빨리 출발했다고 사과문을 낸 사실이 서양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등은 이 소식을 전하며 일본 특유의 정확성과 사죄 문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일본 내에서는 '과한 사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쓰쿠바 익스프레스는 지난 14일 오전 9시 44분 40초 출발할 예정이던 열차가 20초 먼저 출발했다며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이에 대해 "역사상 가장 아낌없이 뉘우친 20초"(뉴욕타임스), "일본으로 이주를 꿈꾸게 하는 사과"(가디언) 등의 말로 칭찬하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과한 사죄다", "초만 달랐지 시간은 같은데 굳이 사과할 필요가 있나"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라 다케시(原武史) 일본 호소(放送)대 교수는 아사히에 "(철도회사가) 시각표를 초단위로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승객들에게 있어서는 똑같은 '9시44분'"이라며 "일일이 공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타사(다른 민영 철도회사)가 조금만 철도 운행이 시간표와 달라지면 사과하기 때문에 자신들도(쓰쿠바 익스프레스) 예의상 사과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라 교수는 일본 철도가 유독 시간표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제국주의 시절 일왕이 타던 특별열차의 전통이 있다고 설명했다. 1928년 일왕이 교토(京都)에 갈 때 30초 단위의 특별 시간표가 짜여 거의 정확히 열차가 운행됐는데, 이후 시간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이 철도회사의 전통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표에 대한 이런 과도한 집착은 과거 대형 사고의 비극을 낳기도 했다.
2005년 107명의 사망자를 낸 JR다카라즈카(寶塚)선 탈선사고 때는 운전사가 열차 운행이 1분 정도 늦어지자 시간을 단축하려고 했던 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사토 나오키(佐藤直樹) 규슈(九州)공업대 명예교수는 "일본에는 주변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일단 사과하는 습관이 있다"며 "기업들도 불평이 인터넷상에서 들끓는 것을 두려워해 먼저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20년간 기업들의 사과가 점점 과잉이 돼가고 있다"며 "20초 먼저 출발했다고 사과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b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