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외환시장이 단기 국채보다 장기 국채의 수익률(금리) 등락에 더 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0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단기 금리와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달러화를 포함한 주요 통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으나 최근에 와서는 외환시장에서 장기 국채의 금리를 더욱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 국채 2년물의 스프레드(금리차)는 통상적으로 달러-유로 환율의 변동과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돈의 이동과 경제 펀더멘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기 투기성 자금이 상대적 고금리를 쫓아 움직이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가 이뤄지면 환율은 영향을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는 것은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이 더 낫다는 신호여서 해당국 통화의 강세를 최소한 명목적으로는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올해 들어 깨지면서 지난 9월 국채 10년물의 수익률 격차와 유로·엔·파운드화 각각에 대한 달러화 가치 사이의 상관관계는 199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일본과 유럽의 투자자들이 현금과 단기 국채의 금리가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지자 미국 장기물 국채를 사들였고 그 영향으로 돈의 흐름이 장기 국채 금리에 예전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배경이다.
중앙은행들의 정책도 한 몫을 했다. 유로존 경제가 5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장기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그 실례다.
경제 펀더멘털을 고려해 이동하는 돈들이 단기물보다 장기물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나아가서는 환율도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랑스 아문디 자산운용의 채권·외환전략가인 바스티엥 드뤼는 유럽의 단기 금리가 안정된 만큼 단기 금리차에는 별다른 정보가 담겨 있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ECB의 정책 대응을 봐가며 돈이 움직이자 독일 국채 10년물은 상당한 진폭을 보였고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 가치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달러화가 지난 두달 동안 랠리를 펼치는 동안에도 시장의 주목은 장기 국채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 국채 10년물의 금리는 독일 국채 10년물보다 더 큰 상승률을 보였다.
국채 장기물이 주요한 변수가 됐다는 사실은 올해 들어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많은 외환 트레이더들이 허를 찔린 이유도 설명해준다. 환율과 단기 국채 금리의 관계가 단절된데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두 차례 올렸는데도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 것도 같은 이유다. 2016년 12월 말 2.5%이던 국채 10년물 금리도 올해 9월에 2.05%까지 떨어졌다.
반면에 독일 국채 10년물의 금리는 이 기간에 상승했고 일본 국채 10년물의 금리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국채 장기물의 움직임이 유로화와 엔화의 상대적 강세를 말해주는 셈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외환시장에서 중앙은행들이 정하는 단기 금리가 대단치 않게 여겨진다는 것은 중앙은행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율과 국내 금융여건에 대한 중앙은행의 통제력이 예전보다 줄어들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연준은 올해 들어서 긴축적 통화정책을 취했지만 달러화 약세와 국채 10년물 금리의 하락이 이를 희석시키고 말았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금융 여건은 2차례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1993년 이래 가장 느슨하다.
물가상승률이 목표를 밑돌고 있어 연준은 아직까지 금리 정책이 먹히지 않는데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신경을 쓴다면 1993년의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되살리는 해가 될 것이다.그 이듬해 연준은 금리를 전격 인상해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로 인해 국채 금리가 뛰었고 달러화와의 상관 관계도 전적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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