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군산 철새도래지 관광객 뚝…숙박업소·식당도 썰렁
농민들, 스스로 방역복 입고 'AI와 전쟁 선포'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 겨울 가금류 농장을 초토화시켰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의 악몽이 또 시작되는 모양새다.
방역 당국은 올겨울 첫 고병원성 AI 발생지인 전북 고창과 순천을 넘어 전국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이 최고 경계 및 방역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가금류 농가는 물론 지역상권은 언제 끝날지 모를 또 한 번의 소용돌이에 이미 빠져들고 있다.
가금류 산업 외에 지역경제에도 직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줬던 전례를 굳이 들춰볼 필요도 없이 고창과 순천에선 당장 지역경제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수많은 관광객과 탐조객이 찾았던 순천만이 폐쇄돼 지역 숙박, 음식점 등 상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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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도래지 찾던 발길 '뚝'
고병원성 AI가 순천을 덮친 21일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에는 적막감이 맴돌았다. AI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전남도가 순천만습지 전면 폐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열린 갈대축제가 성황을 이루면서 관광객 10만여 명이 몰렸던 곳이지만, 이날 순천만 주차장은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대형 철새 조형물로 장식된 정문에는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출입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직원 38명은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 순천만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순천시 공무원 하모(36)씨는 "과거에는 주변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예방 차원에서 순천만을 폐쇄했는데 올해는 여기서 발생해 걱정이다"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계절과 겹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순천만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10개 철새도래지를 단계별로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에 들어가 철새도래지 주변 상권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철새도래지로 이름을 알린 전북 서해안 벨트(군산∼부안∼고창)에서도 탐조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군산 나포면 십자들녁에서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에서도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탓이다.
다행히 전염성이 약한 저병원성(H5N3)으로 확인됐지만, 철새도래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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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렵장 운영 중단 등 AI 여파 가시화
전북도가 AI 최초 발생지인 고창군의 수렵장 운영을 21일부터 전면 중단하면서 수억원의 수입이 날아가게 됐다.
전북도는 각종 농작물 피해 예방 및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동절기 수렵장을 고창군에서 이달 1일부터 운영해왔으나 AI를 차단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
수렵장 폐쇄로 당장 2억원 안팎의 수입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도는 AI 상황에 따라 완주군 수렵장 축소 운영 또는 중단 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전남 순천만 폐쇄는 주변에 터를 잡은 숙박업소와 식당 업주에게까지 미쳤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펜션 111곳과 꼬막 정식 등을 파는 식당 25곳이 성업 중이다.
펜션을 운영하는 김영자(53·여)씨는 "지난 갈대축제 때 어찌나 사람이 많이 왔는지, 수돗물이 안 나올 정도였다"며 "올겨울은 이미 예약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아쉬워했다.
식당 주인 김대권(45)씨는 "올해는 너무 빨리 조류인플루엔자가 찾아와 날이 풀리는 봄까지 기다리려면 폐쇄 기간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평일에도 200여 명 이상, 주말이면 700여 명 이상 찾았는데 가을 특수는 끝난 것 같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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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 AI와 전쟁 재개
고창군 흥덕면에서 육계농장을 운영하는 황모(50)씨는 AI로 직격탄을 맞았다.
병아리 6만∼7만 마리가 꽉 차 있어야 할 그의 육계농장은 텅 비었다.
평소라면 병아리 울음으로 가득한 농장에서 사료 뿌리기에 바빴겠지만, 하릴없이 손을 놓고 있다.
지난 19일 고창군 흥덕면의 육용오리 농가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확진된 이후 입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씨는 "작년에도 AI가 터져서 죽을 맛이었는데, 찬 바람 부니까 어김없이 또 AI가 찾아왔다"며 "손을 써볼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속은 타들어 가고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더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농민은 방역복을 입고 AI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서 오리 4만5천여 마리를 사육하는 농민 권용진(50)씨는 AI가 터지자 즉각 방역복을 챙겨 입었다.
한국오리협회 영암군지부장을 맡은 그는 올해로 2년째 회원들과 'AI 자율방재단'을 꾸려 방역활동에 나서고 있다.
권씨와 동료들은 '한 곳이라도 뚫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 방역복을 챙겨 입고 소독차에 오른다.
권씨는 "제 본업은 소독약 치는 방역대가 아니라 오리 키우는 농민"이라며 "고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AI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회성, 형민우, 홍인철, 임채두 기자)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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