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회 연설 러 고등학생 자국서 '나치 찬양' 비난에 곤욕

입력 2017-11-22 17:47  

독일 의회 연설 러 고등학생 자국서 '나치 찬양' 비난에 곤욕

"무고하게 숨진 나치군" 등 표현 문제 삼아…'과도한 애국주의' 지적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의 한 고등학생이 최근 독일 의회에서 한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연설 때문에 러시아가 시끄럽다.

이 학생의 연설 내용이 나치를 찬양했다는 비판이 고조되면서 학생과 가족들을 응징하겠다는 협박이 쏟아지자 크렘린궁 대변인까지 나서 냉정을 호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시베리아 북부 도시 '노비우렌고이' 출신의 고등학교 2학년생 니콜라이 데샤트니첸코는 지난 19일 다른 러시아 학생, 독일 학생들과 함께 독일 의회에서 연설을 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숨진 독일과 러시아(소련) 군인들을 기리는 추모의 날에 맞춰 양국 학생들이 의회 의원들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앞에서 전쟁 관련 에세이를 발표하는 의회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데샤트니첸코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자기 증조할아버지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숨진 한 나치군 병사의 얘기를 소개하며 전쟁과 폭력 반대, 평화 옹호 주장을 폈다.

하지만 2분에 불과한 짧은 연설에 포함됐던 일부 내용이 러시아인들의 오해를 사면서 비난의 표적이 됐다.

특히 "게오르그(나치군 병사)의 이야기가 내게 감동을 줬고, 나치군 병사 매장지를 찾게했다. 평화롭게 살면서 싸우고 싶지 않았던 많은 사람 가운데 무고하게 숨진 이들의 무덤을 보고 큰 슬픔을 느꼈다. 그들은 전쟁 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소련군의 적이었던 나치군 병사의 이야기에 '감동과 큰 슬픔을 느꼈다', 나치군들이 수용소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는 등의 내용과 나치군 병사를 '무고하게 숨진 이'로 표현한 것 등에 비난 세례가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학생을 '반역자'로 부르며 '그를 태워죽여라'는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검찰과 정보기관, 대통령 행정실 등에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누가 연설문을 작성했는지 규명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일부 의회 의원들도 "적들이 학생의 연설을 악용할 수 있다"며 검찰에 연설문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한편에선 학생을 옹호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문제 학생의 어머니는 "당초 길게 준비했던 연설문을 2분 정도의 분량으로 줄이면서 의도가 왜곡됐다"며 "연설의 핵심은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고 비극을 재현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고향인 노비우렌고이시(市) 당국 등도 학생이 말하려 했던 진의를 이해해 줄 것을 호소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급기야 크렘린궁까지 나섰다.

대통령 아동권리 담당 전권대표 안나 쿠즈네초바는 학생과 그의 가족들의 안전을 도모해 달라고 사법기관에 주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학생에겐 아무런 나쁜 의도도 없었다"며 "광란적인 인신공격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를 두둔했다.

일각에선 이번 논란을 우크라이나 사태와 서방의 대러 제재 등으로 고조된 러시아 내의 과도한 애국주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했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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