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권고했다. ITC 권고안에 따르면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을 120만대로 정하고 초과 물량에 첫해 50%, 2년 차 45%, 3년 차 40%의 관세를 물린다는 것이다. TRQ 120만대에도 관세를 물릴지에 대해서는 ITC 안에서 '무관세'와 '20% 부과'로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ITC는 이런 내용을 담은 2개 권고안을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ITC는 세탁기 부품에도 TRQ 방식의 세이프가드를 권고했다. 첫해엔 5만 대분 초과 물량에 50%, 2년 차엔 7만 대분 초과 물량에 45%, 3년 차엔 9만 대분 초과 물량에 40%를 부과하는 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일 기준 6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와 수위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권고안을 수용하면 2002년 한국산이 포함된 수입 철강에 최고 38% 관세를 물린 후 16년 만에 처음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가정용 세탁기는 도합 약 300만대, 금액으로 10억 달러(약 1조1천400억 원) 규모다. 두 회사의 미국 수출용 세탁기는 주로 베트남과 태국에서 생산된다. LG전자는 창원공장에서 대미 수출분의 약 20%를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이 ITC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면 두 회사가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약 160만대가 '관세 50%' 영향권에 들어간다. TRQ에도 20% 관세가 부과되면 현지생산 말고는 미국시장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가정용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월풀이 38%로 가장 높고 다음은 삼성전자(16%), LG전자(13%) 순이다.
이 권고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에서 세탁기를 팔려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부품도 미국에서 조달하라는 것이다. 미국인 일자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가동을 목표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는 미국 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테네시에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는 LG전자는 공장가동 시점을 당초 계획했던 2019년 1분기에서 내년 말로 앞당겼다. 두 회사 입장에선 당장 미국 공장을 돌려 수요를 맞추기도 어렵지만, 베트남과 태국 공장의 생산 물량을 어떤 시장에 내다 팔지도 걱정거리다.
세이프가드는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와 달리 공정무역에도 발동된다. 그래서 발동 요건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도 국내 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 등이 확인될 경우만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ITC는 자국 가전업체 월풀의 청원을 일부 받아들여 이번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ITC의 결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 같다. 월풀이 소비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인데 우리 제품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봤다고 떠넘긴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을 중시하는 그의 성향으로 미뤄 권고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ITC가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을 무리하게 적용한 측면이 있는 만큼 한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공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미정부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대화를 통해 최대한 설득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해당 업체도 미국공장을 짓고 있는 지역의 여론 동향을 활용해, 정부를 측면 지원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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