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약과 전쟁' 격화 전망…"경찰 단속 재개는 인권 재앙" 반발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에서 이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약과의 유혈전쟁'이 다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 소탕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걸겠다는 의지까지 밝히자 인권단체들의 우려와 반발이 커지고 있다.
25일 ABS-CBN 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한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마약을 통제할 수 없다면 아마도 대통령직 사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아직 행정명령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경찰을 마약과의 전쟁에 다시 투입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작년 6월 말 취임 때 "3∼6개월 안에 마약을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마약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이유를 들어 마약과의 전쟁 시한을 없앴다.
그의 취임 이후 3천900명 이상의 마약용의자가 경찰에 사살됐다. 경찰이 비무장 10대 소년까지 무차별 사살했다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10월 경찰의 마약 단속을 중단시키고 마약단속청(PDEA)으로 단속권을 일원화했다.
PDEA가 마약 단속 전권을 행사하면서 사살한 마약 용의자는 1명에 그쳤다. 그러나 PDEA는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마약 관련 범죄 급증을 거론하면서 경찰의 마약소탕전 재투입이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의 제임스 고메즈 동남아·태평양지부장은 "필리핀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에 복귀하는 것은 인권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경찰이 마약 단속 과정에서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인 수천 명을 불법적으로 사살했다"며 "경찰의 단속 재개로 더 많은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치토 가스콘 필리핀 국가인권위원장은 "숨길 것이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다"며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유엔 인권기구의 조사를 허용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경찰의 마약 단속을 지속해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아그네스 칼라마드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등 유엔 인권전문가 3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필리핀 정부에 마약용의자 초법적 처형을 중단하는 적절한 조처를 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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