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견 청취 의무화' 법 조항 무시…제안부터 통과까지 단 7일
KDI·국회 예산정책처 등 기존 연구기능과 중복 우려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국회의 중장기 과제 연구 지원 기관 설립을 위한 국회미래연구원법이 법에서 정한 절차를 무시한 채 7일 만에 처리돼 '졸속 심의'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는 법안 통과 과정에서 반드시 듣도록 한 정부 의견도 요청하지 않았고 정부가 반대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회의 과정에서 논의하지도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회 예산정책처 등 기존 조직의 활용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제3의 기관을 또 설립하는 것은 자칫 예산 낭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는 국회미래연구원법을 의결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미래 환경 변화를 예측·분석하고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을 도출하기 위한 국회 연구 지원 기관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체제에서 행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은 중장기 연구과제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 산하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법안에 반영된 내년 소요 예산은 총 60억원이지만 조직이 안정되기까지 소요 예산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국회미래연구원법은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발의됐고 바로 당일 운영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법은 '안건이 예산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경우에는 정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국회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지난 23일 법제사법위원회 개최 하루 전인 22일 국회미래연구원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담은 정부 공문이 국회에 접수됐지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결국 국회미래연구원법은 법사위에 이어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국회미래연구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2014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 등 기존 연구기관과의 중복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KDI를 포함해 기존 정책 연구 조직의 인력·기능의 활용도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채 국민의 세금으로 또 다른 기관을 만드는 것은 예산 낭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내부에서도 기존 연구 지원 기관의 기능을 강화하거나 인력을 보강해 중장기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산하의 연구원이 정부 성향의 영향은 적게 받을 수는 있지만 정치적 성향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도 있다.
통상 정책 연구과제는 정치 성향에 따라 연구과제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정책 전망을 위한 전제 조건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연구과제 등 세부 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수당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원장·이사 등이 결국 다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의 낙하산' 집합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법·예산심사·정책감사 등 국회 고유기능 외에 '미래 전략'이라는 추상적인 기능을 위해 국민 세금으로 국회에 별도 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가 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에 앞서 기존의 국책연구기관과 국회지원조직 활용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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