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찬물 끼얹은 느낌" 협회에 강력 항의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유망한 이란 레슬링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경기를 피하려고 우세했던 경기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번 논란은 폴란드에서 열린 23세 이하 세계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이란 자유형 86㎏급 레슬링 대표 알리레자 카리미-마치아니의 25일(현지시간) 16강전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지면서 불붙었다.
카리미-마치아니는 이 경기에서 2회전 1분 30초께까지는 러시아 선수에 3-2로 앞서고 있었다.
동영상을 보면 이때 경기장 밖에서 "져야 해, 알리레자"라는 소리가 들린 뒤 그의 코치가 작전시간을 요청한다.
이후 카리미-마치아니는 허무하게 옆굴리기 6번을 연속으로 허용, 12점을 내리 내줘 3-14로 패배해 버린다. 레슬링 규칙상 10점 이상 차이가 나면 경기 도중이라도 승패가 결정된다.
동영상에서 보면 카리미-마치아니는 상대의 옆굴리기 기술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오히려 회전을 돕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기에서 이겼다면 그는 8강전에서 이스라엘의 유리 칼라시니코프와 대결해야 했다.
이를 두고 이란 네티즌들은 정치 때문에 스포츠가 오염됐다는 비판론과, 이스라엘인과 경기하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패배하는 게 낫다는 옹호론이 맞섰다.
레슬링과 같은 체급 경기에선 수준급 실력의 선수들은 어느 국제대회에서도 만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라이벌'을 둔 카리미-마치아니를 동정하는 여론이 우세한 분위기다.
그는 2013년에도 같은 이유로 제 뜻과 다르게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27일 이란 ISNA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었고 엄청나게 훈련했다"면서 "하지만 그 지시(패하라는 것)를 들었을 때 내 꿈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잔인하고 악마 같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내 꿈을 앗아간 것도 잔인하지 않으냐"고 항의했다.
그러면서 이란레슬링협회가 금메달 수상자에게 약속한 포상금 1만9천달러를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란체육·청소년부는 이에 대해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을 위해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로 희생했다"면서 "그의 행동은 영웅적이고 고귀하다"고 치하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탓에 이스라엘과 스포츠 경기를 금지한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상대를 최악의 적성국으로 여긴다.
올해 8월 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마수드 쇼자에이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서 소속팀인 그리스 파니오니오스FC와 이스라엘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에 출전했다가 대표 자격이 박탈됐다.
이란뿐 아니라 아랍권 선수들이 종종 이스라엘 선수와 대전하지 않으려고 국제대회에서 몰수패 하거나 악수를 거부하기도 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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