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2천197건인 반면 임종기 환자 신청은 11건 불과
"가족의 대리 결정 권한 확대해야" vs "환자 본인에 시간 줘야"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건강한 성인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관심은 높은 반면 실제 환자의 참여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에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라는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의료현장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말기 환자에 연명의료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고 환자의 보호자마저 '죽음이 임박했다'는 걸 알리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이처럼 연명의료에 대한 높은 관심과 달리 환자와 보호자의 참여가 저조한 데에는 국내 특유의 효(孝) 문화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부모·가족에 '연명의료 중단' 말 꺼내기 힘든 문화 증명
2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난 10월 23일부터 이달 24일 오후 6시 현재까지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한 중간 결과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건강할 때 기록해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천건 넘게 작성됐다.
반면 실제 연명의료 중단에 참여하겠다는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11건에 그쳤다.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가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내용이 담긴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환자 가족 2인이 마찬가지로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진술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함으로써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시범기간 한 달간 연명의료계획서를 제출한 환자 2명은 연명의료 시술이 유보된 데 따라 존엄사했다. 전체 존엄사 인원 7명 중 나머지 5명은 환자 가족 2인의 진술(4명)이 있었거나 환자 가족 전원 합의(1명)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이 이행됐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저조한 것과 관련, 의료계에서는 말기 환자에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라는 말을 전하기 어려운 현장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본다.
말기 환자에 연명의료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은 데다 환자의 보호자마저 환자에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환자가 막상 말기가 되거나 임종이 임박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대한 치료를 받길 희망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원없이 해드려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가족의 죽음을 예상하는 것 자체가 '불효'라는 문화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 위원)는 "우리나라는 아픈 부모에게 연명치료를 비롯해 모든 방법을 마지막까지 동원해야 '자식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며 "일반인들의 참여율은 높겠지만, 환자 참여율은 저조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대로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가 연명의료의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기관이 전문 상담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가족의 대리 결정 권한 확대해야" vs "환자 본인에 시간 줘야"
이 밖에 환자의 의사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절차적 문제도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사람과 실제 환자 참여의 간극을 벌이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허 교수는 "죽음을 앞두고 심폐소생술 등을 거부하는 환자를 계산하면 하루 400~500명 정도가 '사실상 존엄사'를 택하고 있는데도 실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환자는 매우 적은 편"이라며 "반드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서명을 받아야 하는 규칙이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기 어렵기 때문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처럼 환자의 의사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 대리 결정 하는 방안의 확대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많은 환자가 자기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만큼 가족의 대리결정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널리 사용돼 온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DNR; do not resuscitate) 역시 대부분 가족이 대리 서명해왔다.
반면 복지부는 가족의 대리결정 권한 확대를 논의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시범사업 초기인 데다 법의 취지 자체가 환자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일종의 '준비시간'을 주겠다는 것인 만큼 우선은 상황을 보겠다는 것이다.
권준욱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현재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의료기관이 10개에 불과해 작성 건수나 이로 인한 사업 성과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며 "초기 단계인 만큼 외국과 비교하기보다는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내년 1월 중순 이후에 좀 더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오히려 그동안에는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대리 결정하는 임종문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무의미한 치료 대신 죽음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자는 게 법의 취지"라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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