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시에 담긴 혁명의 암호 풀어내야"

입력 2017-11-29 07:08   수정 2017-11-29 10:50

"이육사 시에 담긴 혁명의 암호 풀어내야"

역사학자 도진순, 연구서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 책은 아마 추리소설 같이 읽힐 겁니다. 육사의 시들이 그동안 전부 다 거꾸로 해석돼 있거든요. 중요한 시어들에 담긴 혁명과 전복의 의미가 전혀 해석되지 못했어요. 물구나무서듯 거꾸로 알려진 시들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백범일지' 등 저서로 알려진 도진순(59)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2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펴낸 책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에는 일본강점기 대표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를 새로운 관점으로 연구한 그의 논문 6편이 담겼다.

이름난 역사학자가 한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책을 내기는 국내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어떻게 시인 이육사에 빠져들었을까.

"2011년부터 이육사의 '청포도'에 나오는 '청포'의 의미에 관심을 두고 조사를 해봤습니다. 청포도가 포도 품종이 아니라 아직 익지 않은 풋포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또 '내가 바라는 손님'이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구절에서 청포를 관리들이 입는 고급 예식 복장으로 해석하면 바로 앞의 '고달픈 몸으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중국 두보의 시 전집을 읽어보니 '청포백마'가 반란군을 칭하는 것으로 자주 쓰였어요. 중국 고사에 남조의 '후경'이란 사람이 푸른 도포를 입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돼 있거든요. 청포를 이렇게 반란·혁명의 의미로 보면 고급 예복이란 뜻과는 정반대가 되는 거죠. 이렇게 육사의 시가 암호와 같은 은유와 상징으로 쓰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이걸 풀어내는 데 골몰하게 됐습니다."

그가 이렇게 육사의 시를 중국의 고사, 한시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육사가 할아버지 이중직의 탄탄한 전통교육을 받아 15세에 이미 '흉중 오천권'으로 표현할 정도로 고전 수천 권을 통달했다는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일제의 강압 통치가 극에 달한 시대 상황에서 가혹하고 철저한 검열을 피하려면 고도의 은유와 상징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육사 시의 회화성은 실경이나 형상을 넘어서 마치 '주역'의 '괘상(卦象)을 뿌려놓은 것과 같은 형국"이라고 도 교수는 분석한다.

그 사례로 육사의 시 '서풍'에서 서쪽은 주역의 '오행'(五行)-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중 금과 연결지어 풀이된다. 주역에서 서쪽은 금, 흰색과 연결되며 그 성질로는 의로움(義)을 상징한다.

비슷한 관점으로 육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절정'도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도 교수는 말한다.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꾸러야 하나?/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깜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절정 전문)

여기서 '강철로 된 무지개'를 그동안 국문학계에서는 오색찬란한 무지개에 빗댄 것으로 보고 '비극적 황홀'이라거나 역설적 표현을 의도한 '절망과 탄식'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도 교수는 이런 해석이 잘못됐으며, 그보다는 중국 진시황 암살에 나선 '형가'의 고사와 관련 있다고 본다. 형가는 진나라로 떠나기 전 비장한 노래 '이수가'를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중국 역사서 '사기'는 형가가 노래를 부르던 당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白虹貫日)"라고 썼다. 이후 형가의 외침이 하늘에까지 기운이 뻗쳐 흰 무지개가 되어 해를 찔렀다는 고사가 생겨났다.

도 교수는 육사가 이 '흰 무지개', '백홍'의 이미지를 가져왔으며 '강철로 된 무지개'는 '해'로 상징되는 일본을 찌르는 강철같은 검(劒), 검의 칼날에 비치는 서릿발 기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투쟁선언에 그치는 표현이 아니다. 아시아의 장구한 역사에서 '흰 무지개'는 대개 '불온의 상징'이었다. 육사는 해박한 안목으로 '흰 무지개'의 원천으로 올라가 그 건강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권력에 의해 전복되어온 이미지를 다시 전복하고자 하였다. 변혁을 가로막아온 권력 주도의 넓고도 긴 역사를 베어내는 절창의 표현이 바로 '강철로 된 무지개'인 것이다." (본문 119쪽)

도 교수는 이육사의 재평가를 강조하며 "윤동주 시인은 순국지인 일본에서 제사를 지내는 데 비해 육사는 프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중국의 일본영사관에서 순국했는데도 아무런 예도 갖추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이육사가 중국에서 추앙받는 대문호 루쉰을 위한 추도문을 쓰고 그의 문학을 깊이 연구했던 점을 들며 "중국 학계와 함께 루쉰과 육사의 혁명문학을 연결지어 논의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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