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로마 가톨릭 교회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공개 연설에서 로힝야족 '인종청소'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자 인권단체 등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교황은 29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와 환담한 뒤 외교단과 정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첫 공개 연설에서 "미얀마는 오랜 민족분규와 적대 행위로 인해 지속해서 고통과 깊은 분열을 겪었다. 미얀마를 조국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로힝야족 문제를 거론했다.
교황은 이어 "미얀마의 미래는 사회 구성원의 위엄과 인권, 각 소수민족 그룹의 정체성과 법치, 민주적 질서를 존중함으로써 모두가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평화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은 수치가 집권 이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소수민족 간 평화 정착' 사업을 독려하면서 "종교적인 차이가 분열과 불신의 이유여서는 안되며 오히려 화합과 용서, 관용과 현명한 국가건설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직 유엔 관리이자 정치 분석가인 리처드 호시는 AFP통신에 "(로힝야족을 둘러싼) 긴장감을 고려해 매우 신중하게 표현을 선택한 연설이었다"며 "그는 미얀마 지도자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더 솔직했던 것 같다"고 논평했다.
그는 이어 "교황이 (로힝야족을 거론하지 말라는) 미얀마 주교단의 충고를 받아들였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부분을 연설을 통해 암시했다"고 덧붙였다.
로힝야족 난민과 인권단체는 아쉬움과 혹평을 내놓았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일하는 로힝야족 활동가 모함마드 주바이르는 AFP통신에 "교황이 로힝야족 위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로힝야족 난민인 초 나잉은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교황이 미얀마를 방문한다기에 기뻤고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교황은 로힝야족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니 미얀마의 인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며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분조차도 우리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니 슬프다"고 개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아시아 지부의 필 로버트슨 부지부장은 "지금 로힝야족은 모든 것을 빼앗긴 상태인데 이름마저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내일 열릴 대중 집회에서는 그가 로힝야족의 이름이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