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내년에도 한국리그 나오고 싶어 술 사고 있죠"

입력 2017-11-29 07:50  

조치훈 "내년에도 한국리그 나오고 싶어 술 사고 있죠"

첫 참가 '시니어리그'서 KH에너지 우승 이끌어




(부산=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나이가 들면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났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많이 생겼어요.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참 좋았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바둑의 전설 조치훈(61) 9단에게 2017년은 무척 뜻깊다.

2017 한국기원총재배 시니어바둑리그에서 부산을 연고로 하는 KH에너지 팀 소속 기사로 출전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6세에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 1968년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인 11세 9개월에 입단한 그는 일본 최고 기전인 기성(棋聖), 명인(名人), 본인방(本因坊)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을 4차례나 기록하며 일본 바둑을 평정했다.

일본을 주 무대로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지만, 조치훈 9단은 정작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서 제대로 활동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아쉽게 느끼고 있었다.

세계대회나 이벤트 대회를 제외하고는 한국 바둑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던 그는 올해 시니어리그에 합류했을 때 "한국에서 바둑 두는 게 나의 소원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시니어리그가 KH에너지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지 약 보름 후인 28일, 조치훈 9단을 부산에서 만났다.

조 9단은 일본 젊은 기사들을 이끌고 부산을 방문한 터였다. 부산 농심호텔에서 열린 제19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일본 대표팀 단장으로서다.

호텔 지하 1층에 마련된 검토실에서 조치훈 9단과 일본 기사들은 머리를 맞대어 대국 내용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조치훈 9단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면서 "내가 지금 단장인지 감독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경기하러 올 때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 시합이 있으면 밥을 먹어도 바둑 생각에 재미가 없는데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기분이 좋다"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일본으로 가서 기억은 잘 안 난다. 하지만 부산이 좋다"며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조치훈 9단은 지난 7월부터 시니어리그에서 활동한 기간에도 "아주 많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그는 "선수·감독 모두 5명이었는데, 사이 좋게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여러 바둑 이야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고…. 그런 기회가 이전까지는 없었는데, 마음을 풀고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조치훈 9단은 이렇게 자주 한국을 드나든 적이 없었다면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나던 시기에 시니어리그에 참가하라는 제의가 들어와서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로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시니어리그는 올해부터 해외 소속 선수에게 참가 문호를 개방하면서 조치훈 9단이 참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여기에 부산을 연고로 하는 신생팀 KH에너지의 송진수 회장이 조치훈 9단의 초등학교 친구이기도 해서 고향 팀 소속으로 뛸 인연이 닿았다.

조치훈 9단은 일본 기전과 시니어리그를 병행하느라 수없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야 했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성적이 좋으니까 기뻤다. 한국에서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항상 팀원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도 먹고 밥도 먹은 게 진짜 즐거워서 피곤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국 후 항상 밥을 같이 먹었는데, 그런 단합이 우승 비결"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김성래 감독이 이끌고 조치훈 9단, 장수영 9단, 강훈 9단, 장명한 6단으로 구성된 KH에너지는 정규시즌 내내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장수영 9단(8승 6패)과 강훈 9단(7승 7패)이 각각 14경기를 소화했지만 조치훈 9단은 9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하지만 출전 시에는 7승 2패로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조치훈 9단이 일본 일정으로 못 뛴 5경기에서는 장명한 6단(2승 3패)이 공백을 채웠다.

조치훈 9단은 시니어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유력해 보인다는 말에 "아니죠"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장수영 형님의 성적이 좋으셨고, 제가 대국에 못 올 때 장명한 씨가 잘 이겼다. 그걸 졌으면 우승 못 했다. 강훈 씨는 리그전에서는 성적이 안 나왔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두 힘을 합쳤으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 서로 마음으로 사이가 다 좋았다"고 끈끈한 동료애를 드러냈다.

내년에도 시니어리그에서 뛰고 싶은지 묻자 조치훈 9단은 단번에 "네!"라고 답했다.

그는 "감독님께 술을 한 잔 사면 나를 초청해주실 것 같아서 열심히 술을 사고 있다. 잘릴까 봐 열심히 사고 있다"며 "저는 이렇게 적극적인데 팀도 환영해준다면 좋겠다"며 껄껄 웃었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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